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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프라하의 봄’에 대한 남북한의 인식과 반응

The Recognition and Reaction of North and South Korea to the ‘Spring of Prague’ in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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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도민
소속 및 직함 서울대학교
발행기관 역사문제연구소
학술지 역사비평
권호사항 (123)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72-101
발행 시기 2018년
키워드 #프라하의 봄   #68혁명   #남북한 민족주의   #냉전   #주체   #자주   #김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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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연구는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펼쳐졌던 이른바 ‘프라하의 봄’이라는 사건에 대해 남한과 북한이 각각 어떻게 인식하며 대응했는지를 살펴봤다. 특히 한반도에서 펼쳐지던 ‘냉전-남북분단-민족주의’의 상호관계와 변화과정을 드러내고자 했다. 먼저 남한은 ‘프라하의 봄’은 자유화로 불렸는데 이는 동구 공산권의 분열과 반소(反蘇)에 대한 확대 나아가 경제적으로 자본주의로 나아가는 반공적 시각이었다. 반면 북한의 관점에서 ‘프라하의 봄’은 자본주의로 반동이며 ‘미제국주의’가 조종하는 반혁명이었다. 이어진 1968년 8월 소련 군의 체코슬로바키아 진입에 대해 북한은 일차적으로 옹호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진정한 주권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주체’를 강조했다. 남한은 소련 군의 체코 진입은 ‘적색제국주의’의 약소국에 대한 강압적 지배를 입증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국가와 민족의 이익이라는 ‘자주’를 강조했다. 1968년 남북한은 모두 한편으로는 기존의 양극적인 이분법적 진영 논리를 다시 강화하는 형태로 다극화는 새로운 냉전에 대응하려 했다. 그렇다고 1968년 남북한은 미국과 소련 같은 강대국에 의존하는 기존의 냉전 전략에만 머물지 않았다. 남한은 향토예비군 신설 등 자주국방을 강조했다. 북한은 강대국보다 쿠바 및 베트남 등 작은 나라들과 연대를 강조하며 주체적으로 용감히 싸울 것을 주창했다. 1968년 국제정세는 이제 다극화된 시기이며 약소국의 운명은 스스로 지켜야 하는 그야말로 새로운 냉전의 시대였다. 따라서 남북한 모두 미국과 소련이라는 ‘맏형’에 대해 여전히 기대하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자주’와 ‘주체’의 전략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