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실시한 제10회 한일 국민 상호인식조사는 양국 여론이 관계개선을 지지하고 있음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한일관계는 2019년 한국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에 따른 외교 갈등, 수출규제를 둘러싼 무역 갈등, 지소미아 해소 선언 등 안보 갈등을 겪으며 국교 정상화 이래 최악의 상황을 맞았지만, 이후 양국의 여론은 빠르게 호전되고 있다. 상대국에 대한 인상(호감도), 양국관계 개선에 대한 여망, 한일관계의 미래 전망 등에서 상호인식 조사를 시작한 2013년 이래 최고치 수준에 육박하였다. 또한 외교안보 및 경제 사안에 대해서도 양국 간 동조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중국 인식, 북핵 대응, 한미일 안보협력, 경제 안보 대응 등에서 양 국민 간 의견 수렴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국민 여론이 긍정적으로 돌아선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는 여론의 기대에 부응할 것인가. 양국 정부는 여전히 강제동원 판결에 따른 자산 현금화 등 현안을 해결하지 못한 채 관계개선에 잰걸음을 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양국 국민들은 정부 차원의 노력에 대한 기대 수준을 낮추고 있다. 상대국에 대한 자국의 정책에 대한 평가나 신정부 사이 한일관계 개선 전망은 그리 높지 않다. 정부 수준과 국민 수준의 우호감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 이면에는 정부 간 ‘신뢰의 상실’이 자리하고 있다. 양국 정부는 역사문제를 둘러싼 감정적 대립으로 불신의 소용돌이에 빠져 상대국과 협력을 주저하고 상대국의 전략적 가치를 평가 절하하며 종종 대립적으로 행동해온 상황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양 정부는 현안인 전시하 강제동원 및 위안부 문제 해결에 대해 역사 인식 및 법적 인식의 상이를 냉철히 검토하기보다는 국민적 자긍심, 민족주의적 정서를 앞세우는 주장적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설령 현금화 문제를 푼다고 해서 10년간 구조화된 갈등(혹은 ‘잃어버린 10년’)을 해소하기는 어렵다. 이번 국민 여론에서 드러났듯이 역사문제가 외교적 갈등을 일으키지 않도록 관리하면서 미래지향적 협력의 견지에서 여러 신뢰회복조치를 전개해야 한다. 양국은 역사문제에서 대승적 합의를 향한 노력과 병행하여 무역, 공급망, 첨단기술, 생태환경, 군사안보 등 사안에서 다면적이고 실질적인 협력을 준비하고 이끌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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