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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이몽: 한국전쟁 시기 중국과 북한의 동맹관계 - 한국전쟁 정전 70주년을 맞아

Bedfellows at Odds: The Sino-Korea Alliance during the Korea War - Marking the Seventieth Anniversary of the Korea War Armistice

상세내역
저자 션즈화
소속 및 직함 화동사범대학 교수
발행기관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학술지 한국과 국제정치
권호사항 39(1)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205-230
발행 시기 2023년
키워드 #동상이몽   #한국전쟁   #북·중동맹   #혈맹   #션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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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한국전쟁 기간 중 중국은 북한과 실질적인 동맹 관계를 형성했다. 그러나 흔히 말하는 ‘혈맹' 관계와는 달리 군 지휘권, 남진 전략, 휴전 협상 등 굵직한 사안을 놓고 북한과 중국의 지도부는 첨예하게 대립했다. 중국이 한국전쟁에 참전하자 스탈린은 대승적 차원에서 북한에 대한 절대적인 통제를 포기하고 전장의 주도권을 중국에 넘겨야 했고, 김일성은 결국 마오쩌둥의 주장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김일성의 북한 내 개인통치 지위에 대해 노동당 내 ‘연안파(延安派)'의 존재가 ‘내우(内忧)'이고, 중국 인민지원군이라는 강력한 세력은 ‘외환(外患)'이었다. 이로 인해 형성된 북·중 동맹은 사실상 ‘동상이몽(同梦異夢)'이다. 중국은 한국전쟁에 참전해 김일성 정권을 구해냈지만 북한 지도자들은 중국에 대한 엄청난 불만과 의혹을 가지게 되었고 전쟁이 끝나자마자 북-중 관계는 경색기에 들어갔다. 이런 현상은 사회주의 진영 내 국가관계의 구조적인 결함을 반영하는 동시에 북·중 관계의 역사적 특성을 반영한다.
마오쩌둥이 어떠한 고려에서 한국전쟁에 참전하기로 하였든 간에 1950년 10월 19일 중국의 조선 출병은 김일성과 그 정권을 위급한 상황에서 구한 것은 틀림없다. 비록 전쟁 전에 마오쩌둥은 북조선과 중국과 소련이 체결한 우호 동맹 조약과 같은 조약은 잠시 맺지 않기로 결정했지만, 그러나 중국은 조약으로 맺은 동맹 이상의 실질적인 역할을 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70주년이 되었다. 북·중 양국이 전쟁 기간 맺은 이런 ‘동맹' 관계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오랫동안 중국 정부 측과 선전부문은 ‘피로 맺어진 우정'과 ‘굳건한 동맹'이라 표현해 왔고, 한국 정부 측과 학계에서도 ‘혈맹'관계라고 용어를 가장 흔히 볼 수 있었다. 정말 그런 것일까? 냉전 이후 러시아와 중국의 역사기록이 계속 공개되면서 연구자들은 점점 더 복잡한 역사적 진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국전쟁 기간 북-중 양국은 표면적으로는 확실히 ‘굳고 깨지지 않는 우정'을 보였지만, 동맹국으로서 양국 고위층 사이에 일련의 첨예한 갈등과 심각한 이견이 존재했으며 특히 몇 가지 전략적 결정과 각자의 중대한 이익에 관한 문제에서 양측은 근본적으로 다른 고려를 하고 있었고 심지어는 완전히 대립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었다.
본고에서는 한국전쟁 중 북-중 동맹관계의 ‘동상이몽'적 성격이 어떻게 조성되었는지를 자료와 사실에 근거해 분석하고자 한다.

In the Korean War, China and North Korea were bona fide allies. This relationship was however not one of “blood alliance” as it has often been characterized. Often taking different stances, the Chinese and North Korean leaderships clashed over critical issues such as commanding power, southward strategies, and armistice negotiations. After China entered the Korean War, to work with the new circumstance, Stalin relinquished his dominance over North Korea and let the Chinese take the lead in the war. Consequently, in all the Chinese-North Korean disputes, Kim Il-sung had no choice but to follow Mao Zedong’s ideas. For Kim Il-sung’s political power, a “Yanan faction” inside the Korean Workers’Party constituted an “internal trouble” while the forceful Chinese People’s Volunteers posed an “external threat.” As such, the Chinese-Korean alliance fared as “bedfellows at oddst” The Chinese intervention in the Korean War rescued the Kim Il-sung regime, but the wartime partnership also caused tremendous grievances and suspicions on the Korean part. As soon as the Korean Armistice was established in 1953, the Sino-Korean relationship turned cold. This historical episode reveals some structural defects of the inter-state relations within the Socialist Camp in general, and some legacies from the historical relations between China and Korea in particular.
목차
Ⅰ. 한국전쟁시기 중국인민지원군의 지휘권에 관한 문제

Ⅱ. 38선 넘어 남진 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

Ⅲ. 휴전회담과 정전협정에 관한 문제

Ⅳ. 한국전쟁 휴전 이후 북-중 관계의 경색 상황

Ⅴ.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