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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북한산성의 승영사찰僧營寺刹 ― 사찰의 역할과 운영을 중심으로

A study on the military temples of the Bukhan-sanseong Fortress ― Focusing on the role and management of temples

상세내역
저자 윤기엽
소속 및 직함 연세대학교
발행기관 한국국학진흥원
학술지 국학연구
권호사항 (25)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493-533
발행 시기 2025년
키워드 #북한산성   #승영사찰   #승군   #삼군영   #성문   #승대장   #의승   #윤기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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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조선 숙종 37년 북한산(혹은 삼각산)에 북한산성北漢山城이 축성된 후 성내에는 승군僧軍이 주둔하는 10개의 승영사찰僧營寺刹이 새로 건립되었다. 본고에서는 이들 각 사찰에 주목하여 사찰의 위치와 역할, 운영 등을 비롯해 그것의 위상과 불교사적 의미 등을 살펴보았다. 이들에 대한 연구는 조선후기 북한산성이 갖는 중요성과 함께 승군제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도 매우 의미 있는 작업으로 보인다. 산성의 방위를 위해 승군이 주둔한 승영사찰은 3군영三軍營의 담당구역 내에 건축된 3대문大門‧3소문小門‧7암문暗門‧중성重城의 인근에 위치하여 대부분 성곽의 수비를 담당했다. 훈련도감訓鍊都監 소속의 상운사‧서암사‧진국사 등은 북문北門을 중심으로 하여 산성 북쪽을, 금위영禁衛營 소속의 보국사‧보광사‧용암사‧태고사 등은 대동문大東門(현 대성문)을 중심으로 하여 산성 동쪽을, 그리고 어영청御營廳 소속의 국녕사‧원각사‧부왕사 등은 대서문大西門을 중심으로 하여 산성 서쪽을 방어했다. 본영인 중흥사에는 승대장僧大將이 승군 전체를 지휘하도록 했고, 각 사찰에는 승장僧將‧수승首僧‧의승義僧 등을 두었다. 산성의 방어를 위해서 3군영의 유영留營이 설치되었지만, 각 사찰은 성문에 인접하여 산성방어의 최일선에서 그 역할을 한 것이다. 산성방어의 주역이었던 승군 중 대다수인 의승義僧(정원 350명)은 교대로 근무를 서는 의승상번제義僧上番制로 운영되었고, 이것이 영조 때 방번전防番錢을 납부하는 의승방번제義僧防番制로 전환되었다. 승군제의 변화와 함께 승영사찰의 변화도 불가피하였다. 하지만 사찰 본래의 목적이 산성의 방위였기 때문에 그대로 존속하였지만 승군의 폐지(1894)를 전후해 대부분 폐사되었다. 현재 북한산성에는 상운사‧태고사‧진국사(노적사)‧국녕사 등이 명맥을 잇고 있으며 중흥사와 서암사는 복원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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