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장환의 전 생애를 통한 시적 편력에 비추어볼 때, 월북 후 한국전쟁의 발발까지의 짧은기간은 해방기에 보여준 그의 시적 지향을 이념적으로 구체화할 수 있는 공간을 보장한 셈이라 볼 수 있다. 특히 남북 분단 이후 북쪽에서 간행한 시집 붉은 기는 시인의 개인적 체험으로서 소비에트 기행의 결과물이자 여행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그의 시가 추구한 이념적 지향이 얼마나 현실적이며 역사적인 맥락을 가지는지를 확인해볼 수 있는 핵심적인 텍스트가된다. 이 시집이 여정에 따라 편집되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시집에 실린 시편에서 두드러지는것은 장소에 대한 관심과 의미화라 할 수 있다. 그것은 곧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라는이념적 대명제의 체험과 확인이라는 시인의 현실적 인식과 직결되거니와, 무엇보다 시양식의선택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 시집의 시들이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학의 방법적 계기로서 혁명적 낭만주의의 이념에 충실하게 쓰여졌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현실참여적 화자의 전면화와 낙관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의식의 표출, 그리고 사회주의 사회의 구현을 위한 공동체적 연대감의 정서화와 같은 특징들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특히 찬가나 송가형식을 채용한 시적 형태는 이러한 시인의 의도를 구현하는 데 매우 효율적이고도 적절하게활용되었다. 그러나 한편 이러한 사회주의 이념에 대한 예찬의 정서를 표면화하는 시인의 내면의식이조국의 통일이라는 대의명제에 대한 신념을 표출하고자 하는 의지와 관련되어 드러난다는 점은 그의 시가 지닌 고유한 본질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그것은 오장환의초기시에서부터 일관된 ‘고향의식’의 문제와 관련되는 바, 이 시집을 통해 그가 가장 관심을둔 것이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차창에 비친 풍경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심장부 레닌그라드의 붉은 광장도, 러시아 문화 전통의 보고 모스크바의 건축물도 아니며, 귀국길에서 떠올린 ‘그 풍경’들과 사뭇 다른 고향의 모습이었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시집 붉은 기는 일제하의 탕아로서 위악적 자아의 노출과 귀향, 현실적이념에의 선택과 추구라는 그의 시적 편력의 종착점으로서 고향의식의 이상화 혹은 이념을통한 고향의 재발견 내지 재구성이라는 시적 인식을 구현해 보여준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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