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은 ‘핵’과 함께 탈 냉전기 북한 연구의 핵심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두 문제 모두 1993년을 기점으로 하는데, 그 해 3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했고, 같은 해 시작된 흉작으로 장기간의 대기근에 빠졌기 때문이다. 즉각적인 대응이 이어졌던 핵문제와 달리, 북한의 인권문제는 1990년대 말에 이르러서야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다. 물론, 이는 1995년 배급제 붕괴 이후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면서 1996년에서 2000년 사이 북한에서 아사자가 33만여 명이나 발생한 일과 무관하지 않았다.
1997년 8월 15일, 유엔인권소위원회(U.N. Sub-Commission on the Promotion and Protection of Human Rights)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에 대해 세계인권선언(UDHR) 제13조 및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의 준수와 동 규약 제40조에 의한 보고서 제출을 요청했다. 그리고 이 연장선상에서 1997년 8월 21일 북한인권 결의안이 상정되었고, 찬성 13, 반대 9, 기권 3으로 통과되었다. 이 시기를 전후로, 북한 인권문제는 서구권에서도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는데, 유럽의 경우 1998년, 미국의 경우 1999년에 북한 인권문제가 정치권의 주요 의제로 등장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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