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어두 ㄹ, ㄴ의 실현 규정을 채용한 북한의 문화어 규범이, 국어사에서 일반적이었던 ‘두음법칙’을 위배하면서까지 남한의 어문 규범과 다른 방향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에 주목하고, 그 원인을 ‘언어적 차별화를 통한 언어 정체성의 구축’이란 관점에서 규명한 것이다. 본론에서 언어를 통한 정체성 형성의 의미, 문화어 규범의 어두 ㄹ, ㄴ의 실현 규정과 그 제정 배경 및 이 규정과 조선시대 평안방언의 ㄷ구개음화 미실현과의 상관성을 분석하였다. 우리의 연구 결과는 다음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북한 문화어의 어두 ㄹ, ㄴ의 실현 규정은 세종 이래 나타난 조선시대 ‘正音’ 의식의 현대적 변용으로 볼 수 있다. 둘째, 북한은 남한 발음과의 차별성을 확보하면서 북한어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어두 ㄹ, ㄴ 실현 규정을 도입하였다. 셋째, 북한이 시행한 언어 정책에 의해 현실 발음과 괴리된 어두 ㄹ, ㄴ의 실현 규정이 북한 사회에 어느 정도 정착되었다. 넷째, 인위적 성격이 명백한 어두 ㄹ 규정은 역사적 전통을 가진 어두 ㄴ 규정보다 북한의 현실 발음에서 확고하게 정착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어두 ㄹ, ㄴ의 실현 규정은 조선시대에 평안방언이 ㄷ구개음화의 미실현을 통해 언어적 정체성을 드러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평안방언이 세종대왕이 세운 ‘正音’을 지향하며 그들의 언어 정체성을 형성하였듯이, 북한은 국가적 언어 정책 차원에서 문화어 규범에 어두 ㄹ, ㄴ의 표기와 발음 규정을 도입한 것이다. 북한에서 시행된 어두 ㄹ, ㄴ의 표기법과 발음 규정은 그 결과가 귀로 들리는 북한말의 특징을 형성하였고, 남한말과 쉽게 구별되는 북한말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 기여했다. 우리는 이 논문을 통해 평안방언의 ㄷ구개음화 미실현과 북한 문화어 규정의 ㄹ, ㄴ 표기 및 발음 규정이 북한 지역의 언어 정체성 형성과 관련된 것으로 보고, 이것이 갖는 사회언어학적 의미를 밝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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