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한국 정부는 비동맹운동 등 국제사회에서 점증하던 아랍의 영향력과 석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아랍과의 친선을 주요 외교 방침으로 삼았다. 하지만 이 시기 한국 정부는 이스라엘과도 수교하고 관계를 유지하면서 아랍 및 비동맹 외교에 큰 차질을 겪었다. 이스라엘과의 수교 이전까지는 한국의 강한 반공주의와 북한의 견제가 한국의 아랍 접근을 방해하였다. 그럼에도 확대되던 한국의 아랍 외교는 1962년의 이스라엘 수교로 인하여 10여 년간 답보하였다. 외교 실무진의 계속된 반대와, 이스라엘 측의 비외교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이스라엘과 수교하고 관계를 유지한 데에는 사울 아이젠버그(Shaul Eisenberg)가 위정자들에게 제공한 정치자금 등이 영향을 주었다. 이스라엘 관계로 인하여 한국은 아랍과 비동맹운동에서 소외되었고, 유엔 외교에서도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1973년 제1차 석유파동 당시 한국은 아랍 측에 의하여 ‘적대국’으로 분류되어 강력한 석유 금수를 당하였다. 한국이 공개적으로 아랍을 지지하고 이스라엘을 비판하고 나서야 한국에 대한 석유 제한은 해제되었고, 한국 기업들의 ‘중동진출’이 본격화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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