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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平壤箕城圖’를 통해 본 平壤城의 構造와 現況

The Current Status and Structure of Pyongyang Fortress Assumed Through the Screen Painting of Pyongyang Giseong

상세내역
저자 백종오
소속 및 직함 한국교통대학교
발행기관 백산학회
학술지 백산학보
권호사항 (104)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129-157
발행 시기 2016년
키워드 #平壤城   #朝鮮時代   #平壤箕城圖   #內城   #中城   #外城   #北城   #백종오
조회수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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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남북이 분단된 현실 속에서 북한의 수도인 평양에 대한 연구는 남한 학자에게는 접근하기 어려운 과제이다. 최근 연구는 고구려의 수도로써 일제강점기 일인 학자 및 1950~1970년대 북한의 고고학 자료를 바탕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평양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근간의 연구와 더불어 고고학 자료의 정리 및 효율적인 검토, 평양 성곽의 변화 및 각종 시설물의 비정과 복원작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사서인 『삼국사기』, 『고려사』,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등을 비롯한 각종 문집, 후대 자료를 수집 정리하여, 평양의 성곽과 변화에 대한 종합적인 규명이 중요할 것이다. 이 연구는 평양성에 대한 소략한 기록과 고고학 자료에 대한 검증이 부족한 상황에서 조선 후기 평양성부터 검증하여 되짚어 나가는 방법으로 평양성의 현황과 구조를 검토하였다. 이를 위해서 조선시대에 작성된 고지도와 더불어 조선 후기 평양의 모습을 상세히 그린 ‘平壤箕城圖’를 통해 살펴보았다. ‘平壤箕城圖’는 조선 제22대 정조(재위 1776~1800)가 수원 화성을 축조하기 위한 모색으로 지도를 제작하면서 그 틀이 갖추게 되었다. ‘平壤箕城圖’는 평양의 역사 유적 및 관아의 위치를 상세히 그린 지도의 기능을 하면서도 수려한 자연풍경을 회화의 산수화법으로 표현한 地圖山水體 그림이다. 19세기 이후에는 기성도 병풍에 대한 수요층이 확대되면서, 평양이라는 주변 경관과 기록 혹은 기념을 목적으로 한 회화적인 요소가 가미되었다. 본고에서는 ‘平壤箕城圖’에 투영된 조선시대 후기 평양의 실제 모습을 통해 부성(내성), 중성, 외성, 그리고 북성으로 구분하여 현황과 변화 과정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검토와 북한의 고고학 자료를 비교한 결과, 외성 성벽의 구조에 대해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북한 측에서는 평양성은 모두 석축으로 되었다고 하나, 문헌과 지도에서는 토성으로 축조된 것으로 기록된 사실과 대비된다. 또한 북성의 우마성은 고려 대몽항쟁기의 甬道가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성의 방어기능을 높이기 위한 옹성 포대의 성곽으로 변화되었을 가능성도 제기하였다. 이 연구는 조선시대 평양성의 현황과 구조의 변화뿐만 아니라, 고려시대 서경성, 668년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항전하였던 평양성의 모습을 되짚어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을 거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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