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에서는 한국전쟁 직후 남북한에서 이루어진 전통음악과 관련한 연구가 어떠한 배경 하에, 어떤 내용과 어느 연구자에 의해서 연구되었는지 비교 고찰해 보고자 하여 1950년대 남북한의 저술 목록을 통해서 살펴보았다. 휴전으로 매듭을 지은 남북한은 이념을 달리하는 두 체제로 갈라졌지만 일본 제국주의 논리로 세워진 식민사관(植民史觀)적 학문 풍토를 타파하고 민족주의(民族主義)적 관점으로 바로 세운 학문을 구축해야 하는 공통된 과제를 안고 있었다. 그러나 남북한은 식민사관을 극복하고 새로운 학문적 토대를 구축하는데 있어서 국가와 학자와의 관계라는 면에서 경향을 달리하고 있었다. 남한은 학자 개인의 의지로, 북한은 국가가 주도하는 상반된 연구경향을 띄었다. 이러한 배경 하에 전통음악의 연구 경향도 다른 점을 보였다. 남한은 이혜구(李惠求) · 장사훈(張師勛) 등의 개인적인 연구로 두드러졌는데, 그들은 문헌과 고악보라는 기록물을 바탕으로 한 연구에 집중되어 있었다. 따라서 궁중음악 중심의 연구가 토대가 되었고 민속악에 대한 연구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경향을 띠었다. 이런 연구방법을 후대에 실증사학(實證史學)적 방법론이라고 하여 긍정적이라고 평가되고 있지만, 그때까지는 고고학이나 역사학 · 민속학 등이 적절히 결합되지 못한 한계를 가졌다. 북한은 ‘과학원’(科學院)의 연구정책과 관련하여 역사민속학(歷史民俗學)적 방법에 의한 고분벽화(古墳壁畵)의 악기와 연주도(演奏圖) 분석을 통해 고대음악사를 해명하려했던 경향이 두두러졌음을 알 수 있었다. 동시에 『악학궤범』(樂學軌範) 영인과 번역 작업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초기에 있었던 고악보에 대한 주제보다는 현장연구에 바탕을 둔 창극(唱劇)과 민요 등 민속악에 큰 집중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