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1897년부터 1905년 사이 함경도, 평안도, 황해도와 강원도 북부 지역의 호적에 나타난 여성 기재 관행과 그 특성을 분석한 것이다. 본 연구에서 검토한 지역은 북위 38도 이북의 18개 군(郡)이었다. 광무(光武) 년간의 한반도 서북지역 호적을 검토한 결과 남부나 중부 지역과 확연히 다른 경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반도 북부 지역에서는 아들에 비해 딸을 거의 기재하지 않았다. 평안남도와 평안북도는 아들의 성비가 각각 3,543과 2,126으로 나타났다. 아들을 딸에 비해 무려 20~35배 가량 많이 등재한 것이다. 게다가 딸의 경우 호적에 오르더라도 이름을 거의 기재하지 않고 있었다. 아들의 경우 전체의 88%가 이름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딸에게는 불과 9.8%만이 이름이 주어졌으며, 그마저도 절반 이상이 ‘김아기’`‘이아기’ 등 ‘아기(阿只)’라는 단순한 호칭으로 표기되고 있었다. 이름 기재 측면에서 가장 남녀 차별이 심한 지역은 평안도와 함경도였다. 평안도와 함경도에서 딸과 손녀의 이름이 호적에 기재된 경우는 전무했다. 한반도 북부 지역에서 보이는 남녀 차별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평안도와 함경도의 경우 여성 호주가 전혀 없었다. 여성 호주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이다. 1896년에 제정된 새로운 호적법은 1호(戶)나 1구(口)의 누락도 없이 실제대로 기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여성 호주가 일괄적으로 빠진 것은 이전 시기부터의 관행에 따랐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 즉 함경도와 평안도의 경우 조선후기부터 여성 호주를 기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황해도와 강원도 북부 지역에서는 소수나마 여성 호주의 존재가 나타난다. 하지만 이들 여성 호주들은 그들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이름조차 호적에 올리지 못했다. 유교적 관념에 따르면 남편이나 아들이 없는 여성들은 죽지 못해 사는 부끄러운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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