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근은 전쟁 중 국군을 따라서 월남한 아동문학가이다. 그는 북한에 있을 때인 1946년 『새길신문』을 통해서 등단하였는데, 이 시기 북한은 ‘평양예술문화협회’와 ‘프로예맹’이 통합하여 ‘북조선예술총연맹’으로 확대(1946. 3. 25.)되었고, 곧이어 그 명칭을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으로 개칭(1946. 10. 13.~14.)하였다. 이때 북한은 이른바 ‘『응향』 사건’(1946. 12.)을 통해서 북한문학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공고히 해 나갔다. 한편 아동문학에서도 ‘아동문화사 사건’(1947) 등을 통해서 사상성을 검증하였다. 이런 와중에 등단을 한 박홍근은 그의 문학관이 이런 일련의 사태를 부정하든 긍정하든 영향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이 글은 여기서 출발하여 박홍근의 월남 계기와 그것이 작품에 끼친 영향 등을 살펴서 그의 문학관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특히 실향(탈향)민의 입장에서 고향에 대한 정서가 어떻게 문학적으로 변용, 형상화되었는지를 살펴서 그의 문학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박홍근의 시에는 전쟁 후 이산과 가난으로 인한 아픔이나 이데올로기의 갈등이 없다. 이데올로기를 초월한 그의 시적 사유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를 규명하기 위해서 등단 작품과 월남의 상관관계를 살펴보았다. 그는 카프의 영향에서 벗어난 시기인 1946년에 등단하였다. 한편 그의 집안은 경제적으로 넉넉한 편이었다. 그는 일본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로 자유로운 성격의 소유자였다. 이런 그의 환경은 주체사상을 노골화하던 북한 체제와 맞지 않았을 것이며, 분단과 6ㆍ25전쟁이 호출한 이데올로기의 호명을 거부하고 동심으로 세계를 역구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동심을 타자(이데올로기)와 나란히 놓음으로써 시적 주체를 구성하였다. 즉 그의 동시는 자아와 세계를 둘러싼 이데올로기의 갈등을 이러한 동심으로 치환시켜 놓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鄕愁와 이데올로기를 동심으로 전이시켜 활달한 시적 주체를 드러냈다. 이것은 탈향과 반공 사이에서 그가 찾은 시적 주체였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