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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정약용의 해배 이후 학문과 춘천 여행

Jeong Yak - yong’s literature and travel to Chuncheon after his ex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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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심경호
소속 및 직함 고려대학교
발행기관 재단법인다산학술문화재단
학술지 다산학
권호사항 (29)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141-196
발행 시기 2025년
키워드 #정약용   #춘천   #산행일기   #산수심원기   #아방강역고.   #심경호
조회수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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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정약용은 유배에서 풀려난 뒤 배로 두 번이나 북한강을 거슬러 올라가 춘천을 찾았다. 즉 59세 되던 순조 20년(1820) 3월 24일 소내를 떠나 북한강을 거슬러 올라 청평사를 유람했고, 62세 때인 순조 23년(1823) 4월 15일에도 역시 마재 앞에서 배를 띄워 춘천에 와서 곡운구곡谷雲九曲을 돌아보았다. 정약용은 첫 번째 춘천 여행 때 지은 시들을 『천우기행권』으로 엮었고 두 번째 여행 뒤에는 『대동수경』의 보편이라고 할 수 있는 『산수심원기汕水尋源記』를 집필했다. 또한 매일의 노정을 『산행일기汕行日記』로 정리했다. 그리고 순조 23년(1823)부터 몰년인 헌종 2년(1836) 사이에 『아방강역고』를 증보했다. 정약용은 『아방강역고』의 「팔도연혁총서」에서 8도 강역의 연혁을 서술하여, 조선 8도를 무대로 활동했던 우리 민족의 삶을 통시적으로 고찰했으며, 우리 고대사의 중심 무대를 반도에 두었다. 오늘날에는 고문헌의 새로운 해석과 고고학적 연구 성과에 힘입어 고조선의 강역을 요동 지역까지 넓혀 보게 되었고, 고조선 중심부를 흐르던 열수의 위치를 요하에 비정하기도 한다. 정약용은 고조선 영역을 만주 지역으로 확장해 보는 견해나 고구려를 민족사의 중심에 두는 역사 인식을 비판했으며, 발해사를 우리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생각에 대하여도 소극적이었다. 정약용은 지리-역사학 방법론은 확립했지만, 전국을 실지 답사하지는 못했고, 중국의 문헌기록을 존중했다. 상고사를 고고학적으로 연구 하는 방법론에서 보면 정약용의 문헌 고증은 한계가 뚜렷하다. 하지만 민족사가 전개된 국토강역을 중시한 점, 지리 환경을 기준으로 역사 발전의 실상을 파악하는 독특한 시각을 확립한 점, 농촌과 수로의 인문자연지리에 주목한 점, 산수자연을 역사미의 구현체로서 파악한 점 등은 현대 학문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두 번의 춘천 여행은 지리-역사학의 방법을 재확인하고, 만년의 학문세계를 확장시키기 위한 의미 있는 답사였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