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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이태준, 최대다수의 행복을 꿈꾼 민주주의자 - 해방 이후 이태준의 사상과 문학

Yi Taejun’s Thought and Literature after Liberation, 1945-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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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배개화
소속 및 직함 단국대학교
발행기관 상허학회
학술지 상허학보
권호사항 43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207-244
발행 시기 2025년
키워드 #이태준   #인민민주주의   #공리주의   #문화주의   #<농토>   #<먼지>   #중간파.   #배개화
조회수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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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해방 이후 이태준은 조선문학가동맹 및 민주주의민족전선의 간부로 참여하여, ‘인민민주주의’를 모델로 하는 통일국가 건설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였다. 당시 이태준을 포함한 중간파 지식인들은 ‘인민민주주의’를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공리주의의 관점에서 수용하였다. 공리주의는 모든 사회 구성원들에게 대등한 주권(일대일)을 부여하고, 모든 종류의 사회적 불평등은 ‘불의’한 것으로 규정하였다. 특히 존 스튜어트 밀은 ‘인간으로서의 품위’ 즉 인격의 함양’이 사회전체의 행복을 증진한다고 주장하며, 사회구성원을 교양인으로 양성할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밀의 ‘주장’은 조선의 ‘문화주의자’에게 선택적으로 수용되었으며, ‘민주주의’는 그들의 중요한 정치적 지향점이 되었고, 해방 이후 문화주의자들이 ‘인민 민주주의’를 수용할 수 있는 논리적 매개가 되었다. 더구나 제2차 세계대전을 파시즘에 대한 (진보적) 민주주의 세력의 승리로 보았던 조선공산당(과 소련)의 관점은 중간파들이 인민민주주의에 경도되는 촉매 작용을 하였다. 이태준은 소련 기행을 통해 ‘문화주의/교양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함을 인식하고, 인민민주주의야 말로 그러한 제도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태준은 이러한 신념을 북한의 토지혁명의 과정과 그 정당성을 기술한 소설 <농토>(1947)를 통해 표현하였다. 하지만 중간파는 기본적으로 점진적 사회 개혁을 지지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계급투쟁을 통한 급격한 변혁을 당연시 하는 공산주의자들과는 다른 위치에 있었다. 더욱이 1948년 남과 북에서 두 개의 국가가 성립되고, 남과 북의 지도자들이 무력적 수단을 통한 독립을 주장하는 분위기 속에서 이태준과 같은 중간파가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한국전쟁 직전에 출판된 <먼지>(1950)는 표면적으로는 남과 북의 대결에서 인민주권을 토대로 한 북한을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내적으로는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방식을 통한 통일독립국가의 건설이 불가능하며 이를 지향했던 중간파의 역사적 임무가 종결되었음을 시사하였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