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북한 정보 아카이브>
Today  0
Total  0

통일과나눔 아카이브 8000만

전체메뉴

학술논문

오키나와의 아리랑 - 미군정기 오키나와의 잔류 조선인들과 남북한

Okinawa's Arirang ―"Leftover Koreans" on Okinawa and the Two Koreas

상세내역
저자 임경화
소속 및 직함 서울대학교
발행기관 대동문화연구원
학술지 대동문화연구
권호사항 (89)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547-584
발행 시기 2025년
키워드 #오키나와 잔류 조선인   #오키나와 전투   #미군정기 오키나와   #남북한   #총련   #민단   #배봉기   #임경화
조회수 10
원문보기
상세내역
초록
본고에서는 식민지기부터 오키나와에 거주했다가 패전 이후에도 잔류하게 된 조선인들이 전후 냉전질서 속에서 방치된 후 발견되는 과정을 분석했다. 오키나와에서미군의 직접통치가 실시되고 20여 년이 지난 후에 이들이 발견된 데에는, 1965년한일협정 이후 이들의 법적 지위를 둘러싼 ‘국가의 논리’가 있었다. 하지만, 한국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초기에는 소극적으로 대처했으나, 오키나와 반환협정 체결 전후로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반환으로 인한 총련의 오키나와 진출에 위기감을느꼈기 때문이다. 총련은 오키나와에 오자마자 오키나와 전투에서 희생된 조선인에 대한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이 조사는 군대의 논리에 의한 오키나와 전투의 역사화에 대항해서 전개된 오키나와 주민 주체의 전투 기록운동을 계승한 것이었다. 오키나와 주민들은‘주민의 논리’에 입각한 오키나와 전투 역사화 과정에서 조선인들을 발견했다. 총련은 이 성과들을 이어 받으면서도 조선인이 주체가 된 오키나와 전투의 실상을 그리려 했다. 그 결과 조사단은 오키나와 전투 준비를 위해 동원되었던 조선인들 중에패전 이후 미군의 전쟁준비에 동원된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을 밝혔다. 조선인들에대한 일제와 미군의 전쟁범죄를 고발함으로써 오키나와에는 식민지주의가 지속되고있었음을 드러내려 한 것이다. 한국정부와 총련의 잔류 조선인에 대한 인식 차는 남북한의 미군정기 오키나와인식이 반영된 것이기도 했다. 한국은 미군의 오키나와 통치를 적극적으로 지지했고오키나와에 친미반공 독립국의 형성을 지원하기도 했다. 한편 북한은 제3세계해방운동 속에서 민족 재결합이라는 공동 목표 하에 오키나와의 조국복귀운동과 연대했다. 당시 주민의 다수가 복귀를 희망했으므로 남한은 ‘군대의 논리’에, 북한은 ‘주민의 논리’에 서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군정기의 오키나와에 접근할 수 없었던 총련의 ‘주민의 논리’는 대다수가 민족 해방이 아닌 귀화를 선택했던 잔류 조선인들의 현실에 부합하지 못했다. 그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전쟁과 냉전의 틈바구니에서 국가와 역사로부터 망각당한피해자가 발견되었을 때, 피해자의 존재를 품고 역사 속으로 이끄는 안내자의 논리가 될 수 있었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