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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해방 후 평양 감리교인의 월남과 교회 재건

The Methodists from Pyeongyang and Church Reconstruction in South Korea after national liberation of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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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조이제
소속 및 직함 한국기독교역사학회
발행기관 한국기독교역사학회
학술지 한국기독교와 역사
권호사항 (42)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117-150
발행 시기 2025년
키워드 #평양   #서부연회   #교회 재건   #남산교회   #시온교회   #성화교회   #조이제
조회수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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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평양은 기독교가 크게 성행한 북한 지역 선교의 중심지였다. 감리교는 선교초기부터 이곳에서 선교를 시작하였다. 그 후 전도사업과 의료사업, 교육사업을 통해 그 기반을 넓히면서 성공적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일제 말기 친일교단의 횡포로 신앙이 훼손되고 교회가 폐쇄되는 등 심각한 시련과 위기를 당했다. 해방 이후 이 같은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 교회 재건운동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평양을 비롯한 북한 지역에서는 교회 재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교회 재건을 위한 교회의 노력이 시작되기도 전에 소련군이 북한 지역에 진주하고 친소적인 북한 정권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이후 북한 지역의 교회는 북한 정권과 갈등, 대립하게 되고 박해를 당하게 되었다. 이 같은 상황의 변화로 인해 대다수의 북한 지역의 교역자와 교인들은 북한 정권의 박해를 피해 남한 지역으로 피난하게 되었다. 피난 나온 감리교 교역자와 교인들은 곳곳으로 흩어져 생활하면서 지역의 기존 교회에 흡수되어 신앙을 이어갔다. 그러나 그 중의 일부 교인들은 자신이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같은 고향에서 피난 나온 다른 교인들과 함께 특별한 신앙공동체를 세웠다. 이 글은 평양에서 피난 나온 감리교인들이 세운 대표적인 교회인 남산교회, 시온교회 그리고 성화교회의 설립과 발전 과정을 살펴본 것이다. 이들 교회들은 각각 다른 시기, 곧 남산교회는 해방 직후인 1945년 12월에, 시온교회는 6.25전쟁 시기인 1951년 10월에, 성화교회는 피난 나온 사람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가는 시기인 1994년 9월에 설립되었다. 그렇지만 이 교회들은 모두 하나님을 예배하는 신앙의 장소뿐 아니라 피난 나온 사람들이 모이는 만남의 장소로 역할하였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미처 밝히지 못한 부분들도 있다. 피난 나온 감리교인들이 남한 지역에 설립한 이들 세 교회에서 평양 지역 감리교회의 역사적, 신앙적 전통과 유산을 잇는다는 분명한 목적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그들이 설립한 교회가 한국교회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 하는 것과 민족통일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도 앞으로 더 연구되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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