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한국전쟁 참전원인에 관해서, 미군이 38선을 넘어 중국의 안전을 위협했기 때문에 중국이 참전하였으며, 중국은 한국전쟁 초기에 파병에 소극적이었다는 주장이 서방학계에서 오랫동안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중국계 학자들은 마오쩌둥이 참전에 결코 소극적이지 않았으며, 반대로 미국과의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파병에 적극적이었다고 주장하였다. 최근 공개된 중국의 당안은, 한국전쟁 발발 이전 마오쩌둥이 한국전쟁개시에는 동의하였지만, ‘미군이 개입할 경우에도 38선을 넘지 않는다면 중국은 파병하지 않는다’며 파병에 소극적이었고, 이 태도를 미국의 한국전쟁 참전과 제7함대의 대만해협 파견발표 이후까지 유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유엔군의 전면적인 참전 이후 더욱 악화된 중국국내의 정치적·사상적 혼란으로 인해 중국공산당 정권의 존립기반이 위협받자, 마오쩌둥은 북한에 유리한 군사적 상황을 이용하고, 미군의 전면적인 증원이 이루어지기전에 파병하여, 한국전쟁을 하루빨리 끝내는 쪽으로 입장을 바꾸었다. 마오쩌둥의 파병 희망은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 직전까지 계속되었으며, 김일성 또한 중국의 조기 파병을 희망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희망은 스탈린의 부정적 태도로 실현되지 못하였다. 참전에 대한 중국의 적극성은 유엔군의 인천상륙 이후에는 약화되었으며, 마오쩌둥은 군사적 ‘허장성세’ 혹은 유엔에서 평화적 협상을 통해 한국전쟁을 해결할 것을 희망하였으며, 스탈린과 김일성의 파병요청에 파병불가를 통보하기까지 하였다. 한국전쟁 초기부터, 파병문제에 있어 마오쩌둥이 최우선적으로 고려한 점은 ‘미군의 38선 돌파’ 여부가 아닌, ‘중공정권의 공고화’에 대한 유불리 여부와 참전 후 승리 가능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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