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같이 1940년 오지영의 《동학사》 간행이 해방 이후 갑오농민전쟁 연구에 미친 영향과 문제점에 대해 서술하였다. 우선 오지영은 초고본을 원고로 하여 자신의 체험과 관련 자료의 검토를 통해 상당 부분을 개작하면서 역사 사실을 복원하려고 하였다. 1940년 간행된 《동학사》는 대체로 史書로서의 자격을 갖춘 책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표지에 ‘역사소설’이라는 문구로 인하여 논란이 되었으며, 농민전쟁의 배경 및 전개과정 기술에서 여러 가지 착오가 있었다. 우선 ‘역사소설’이라는 표지에 대하여 당시 조선총독부의 전시통제로 인하여 수많은 책들이 판매 금지를 당하는 상황이었으며, 특히 영창서관과 발행자인 강의영 명의의 출판물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있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오지영의 저작은 판매 금지 대상이 아니었다. 이유의 하나로 1940년 1월 4일자 『매일신보』기사를 검토하였는데, 오지영과 영창서관은 중일전쟁 선전에 일부 협조함으로써 출판 자체의 탄압은 받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하였다. 다음으로 해방이후 《동학사》의 영향과 농민전쟁 서술의 변화에 대해서 우선 당시 김상기의 『동학과 동학란』에는 오지영의 서술에 대해 언급되지 않았으며 물론 폐정개혁 12개조도 분석되지 않았다. 반면 정규호는 개별 논문에서 오지영의 저작을 그대로 인용하였고, 폐정개혁 12개를 그대로 전재하였다. 이 글은 해방 이후 오지영의 저작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논거로 삼은 최초의 저작일 것이었다. 반면 일본 학계에서는 오지영의 저작물 자체에 대한 논란을 비롯하여 내용 논란이 거듭되었다. 그러면서도 가지무라 히데키는 《동학사》를 직접 일본어로 번역하여 소개하고 민중운동자의 감각으로 쓰여졌다는 의미에서 역사서로서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였다. 또한 《동학사》의 내용 검토에서는 해방이후 ‘동학’의 주도성과 ‘종교적 외피론’에 대한 영향을 살펴보았다. 우선 동학 지도층과 조직에 대한 서술은 동학농민전쟁에 대한 기본적인 구도를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연구에서도 동학과 농민전쟁의 결합성을 강조하고 1890년대 동학사상과 조직의 거대화와 아울러 농민반란의 이념과 조직으로 전화되었음을 강조하였다. 반면 북한학계에서는 초기에 이청원과 같이 농민들의 사회경제적 개혁 지향과 ‘동학’이라는 종교적 외피를 강조하였으나 이후 오길보는 양자의 관련성을 철저히 부정하였다. 한국학계에서도 농민전쟁의 주도층과 참여층에서 동학이 아닌 농민층을 주목하였으며, 동학의 종교 이념과는 다른 ‘보국안민’ 이념으로 해석하려는 농민전쟁 서술이 구체화되었다. 또한 《동학사》에 수록된 농민군의 폐정개혁안 12개 조항에 대하여 여러 논란이 제기되었다. 폐정개혁 12개 조항의 복원, 혹은 실재성을 확인하려는 작업은 초기부터 1960년대까지 조항 자체가 실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였다. 최근 일부 연구에는 12개조 자체가 1920~30년대 오지영의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고 오지영을 심지어 아마추어 역사서술가로 폄하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설명은 실제 관련 사료들과 농민군의 활동을 배제시키면서 현존의 사료만으로 자신의 논리에 꿰맞추려는 실증주의적 연구의 편향을 가지고 있다. 북한학계에서는 폐정개혁 12개조의 실재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오지영이 기록되지 않은 내용을 보충하고 일반화하여 12개 조항으로 개괄하였다”고 하였다. 한국학계에서는 1990년대 들어 12개조의 실재 가능성을 더욱 구체화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정창렬은 12개조의 실재성을 『오하기문』의 기록과 대조하여 1894년 7월 6일 전봉준과 김학진 사이의 전주회담의 결과로 보고 폐정개혁사업의 강령으로 분석하였다. 이러한 해석은 오지영 저작의 신빙성을 인정하면서 구체적인 실체 연구를 진행시킨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폐정개혁 12개조에 대해서는 《동학사》의 초고본과 간행본의 내용 차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분석할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특히 오지영의 회고담과 전봉준 재판과정에 대한 《동학사》의 기술 비교 등을 보충하였다. 앞으로 폐정개혁 12개조의 실재성 여부에 대해서는 홍계훈에게 올린 27개조 폐정개혁 중 사라진 13개 조항의 복원 등 자료 수집과 다각도의 분석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이와 같이 오지영의 《동학사》저술이 미친 영향과 해방이후의 농민전쟁 연구사를 전체적으로 정리해 본다면, 농민전쟁의 이념의 수준이나 지향점에 대한 연구에서는 오지영의 저술에 큰 영향을 받았으며, 동학의 이념과 조직의 관련성을 강조하는 결합설을 주장하거나 양자를 분리해서 인식하려는 농민전쟁설로 크게 나누어져 있음을 확인하였다. 후자의 경향은 동학의 ‘종교적 외피론’에서 벗어나 농민전쟁론으로 귀결하면서도 폐정개혁 12개 조항의 실재성으로 활용하였던 것이다. 지금까지 1894년 농민전쟁에 관한 남⦁북한 학계의 주도적인 연구경향은 오지영《동학사》에 대한 동학의 배제와 개혁 이념의 수용이라는 이중적 차용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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