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는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이자 문화콘텐츠의 핵심 창작소재이다. 판소리는 조선시대 중기 이후 전라도 지방을 중심으로 구비전승 되다가 점차 전국적으로 확대되었고, 근대에 이르러 중국 동북3성에까지 진출하게 된다. 판소리의 중국 진출과 이식 경로는 봉건적 사회구조의 폭정을 피하거나 일제의 통치에 저항하면서 이주한 조선인들의 중국 이주 경로와 맥을 같이한다. 판소리의 중국 이식과 전승은 세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판소리 향유와 이식의 배경이 되는 단계로서, 19세기 중엽부터 시작된 조선인 이주부터 1949년 중국 건국 이전까지이다. 이 시기의 특징은 조선인 초기 이주자와 동일시되는 향유자와, 이들에 의해 중국에 초청된 조선 명창 연행자가 서로 영향을 주는 과정을 거치면서 판소리가 중국 현지에 더욱 널리 전파되었다는 점이다. 두 번째 단계는 중국 내 현지화 과정을 보여주는 단계로서 중국 건국 이후부터 1978년 개혁개방 이전까지이다. 이 시기 조선인은 조선족으로 중국 소수민족에 편입되었고, 판소리를 비롯한 한민족 전통예술은 중국 정부 차원에서 수집하고 발굴하게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북한과의 지속적인 문화 교류 양상을 보인다. 이 시기 주목할 것은 연변창담의 등장이다. 연변창담은 판소리의 형식과 민요의 선율을 바탕으로 재창조되었으며, 지극히 사회주의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어 판소리의 중국 현지 접변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실례가 된다. 세 번째 단계는 중국 개혁개방 이후 현재까지이다. 문화혁명 기간 동안 향유 자체가 단절되었던 판소리는 1992년 남한과의 수교 이후 북한의 영향을 받아 변형된 판소리가 아닌, 보다 원전에 가까운 판소리까지 수용하게 된다. 결국 현행 중국 동북지역 판소리는 문화혁명 기간 동안의 단절, 개혁개방 이후 서양문화 수용에 의한 변질, 더불어 남한 수교 결과에 의한 남한 판소리의 수용까지 겹치면서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의 정책적 지원, 전수관의 건립 등은 연변지역 판소리의 발전을 기대하게 한다. 조선족들의 노력과 정부 지원에 의해 연변지역 판소리의 위상이 긍정적인 모습으로 보여지는 반면, 조선족 사회의 변화에 대응하는 중국정부의 반응은 민감한 편이다. 연변지역 판소리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이러한 정책적 관점까지 포괄하면서 추후 더욱 다각적으로 논구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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