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한국전쟁기 북한 문학의 비평 장치 혹은 사후 검열제도인 ‘합평회’를 중심으로 북한희곡의 검열 방식을 파악하고, 이 같은 방식이 당대 북한 극문학의 흐름과 맺는 관련성을 조명하고자 한다. 전쟁기는 문학예술에 대한 완벽한 통제가 어려운 시점이었다는 점에서, 이 시기 연극장 분석을 통해 일인독재체제가 고착되기 전 북한 당국의 문학예술에 대한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읽어볼 수 있을 것이다. 본고의 경우 한국전쟁 시기 북한희곡의 검열 제도와 텍스트를 함께 분석함으로써 전쟁기 연극 및 북한연극에 대한 기존 연구사의 미진한 부분을 보완하려 한다. 해방 후 『조선문학』에 연재됐던 합평회는 좌담회의 형식을 빌린 문학 검열 방식으로, 작품의 창작자를 합평회장에 동석하게 한 다음 궁극적으로 자기비판을 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연극 분야의 경우 합평회는 참가자들의 활발한 상호비판, 자기비판이 전개될 수 있었던 장(場)으로, 상대적으로 평론이 빈곤했던 연극의 경우 그 중요성은 더욱 중시됐다. 주지할 점은 작가의 자기비판을 유도하는 합평회장에서 여러 주체들의 발화가 뒤섞임에 따라 합평회장에서 제시된 개선책들이 서로 충돌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김일성의 전쟁 중 문학예술에 대한 강령과 화합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합평회는 창작자가 의무적으로 참석해 “토론에서 나온 의견들을 대체로 접수하겠다”는 수순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분명 강제성을 지닌 장이자 ‘무자비하고 철저하게 전개된 비판사업’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합평회에서는 논란이 될 수 있는 지점들이 때로는 결론에 이르기까지 매끈하게 봉합되지 못했고, 석상에서 논란이 됐던 문제들은 전후(戰後)에도 반복됐다. 특히 합평회장에서 전쟁현실을 사실감 있게 다루되 스토리는 재미있게 전개하라는 요구, 혹은 갈등양상을 분명히 표현하되 구체적으로 그리지는 말라는 요구 등은 양립할 수 없는 주문으로 남기도 했다. 곧 합평회장에서 다양한 참석자들의 발화가 뒤섞이는 과정에서 작품에 대한 주문은 경우에 따라 한 편의 텍스트 안에 온전히 융합될 수 없었으며, 이 모순된 요구가 텍스트를 불균질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전쟁기 북한연극은 당국의 문학예술 통제 방식과 함께 완벽한 교화와 선전의 불가능성을 동시에 노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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