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인민민주주의 개혁과 사회주의 협동화의 중요한 대상이었던 농업과 수산업 분야는 1945~60년 획기적인 변화과정을 거쳤고, 농민과 어민들의 생활방식도 크게 변모하였다. 인민민주주의 개혁과 사회주의 협동화는 단지 북한을 인민민주주의체제 및 사회주의체제로 바꾸는 과정일 뿐 아니라 사회주의적인 인간형을 창출하는 과정이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6.25전쟁 전 북한은 중요산업의 국유화 조치를 취하면서도 개인상공업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생산력 발전을 추진하였고, 어업분야는 중소어업을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당시 반제반봉건 인민민주주의 개혁의 일환으로 북한정권이 추진하였던 수산업 정책은 미신을 타파함으로써 어민들의 과학적 인식의 토대 아래 수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닦고, 국영기업소와 수산합작사를 활성화하여 어민들이 국영 및 협동조합 조직의 우월성을 이해하고 자발적으로 사회주의 협동화의 길로 들어설 수 있도록 간접적으로 유도하는 것이었다. 전쟁 이후 사회주의화를 추진하면서 북한은 일천한 생산력 수준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해야 하는 문제에 봉착했다. 북한은 생산력에 기반한 생산관계의 변화라는 사회주의의 일반적인 경로를 따르지 않고, 생산관계의 변화를 통해 생산력을 추동한다는 ‘우리식 사회주의’의 길을 창안하고 사회주의 협동화를 급속히 추진하였다. 이러한 방법은 주체의 각성과 요구를 바탕으로 했을 때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주체의 준비정도가 미약한 곳에서는 효과를 발휘할 수가 없었다. 특히 공동노동과 적색조합운동의 경험이 없었던 수산업 분야에서는 주체의 각성을 통한 생산력 증진이라는 방안이 크게 효과를 거두지 못한 채 지체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김일성은 1957년 제1차 5개년계획을 추진하면서 지체양상을 보이고 있는 대표적인 분야로 수산업 분야를 지적하고, 국가의 직접적인 개입과 지도를 강화하였다. 그 방향은 ‘새세대공산주의자’인 청년층의 전진배치를 통한 세대교체, 여성들의 투입을 통해 신어업문화를 조성하는 급속한 전환의 방식이었다. 이는 국가의 직접적인 개입과 강력한 지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수산업 분야의 사회주의 협동화와 사회주의 인간형의 창출이 쉽게 달성될 수 없었다는 점을 말해주는 동시에, 사회경제적인 조건보다 정치적 지도와 사상개조를 우선시하는 ‘우리식 사회주의’가 어업분야에 관철되는 방식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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