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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무정 숙청의 정치적 원인과 무정의 대응

The Political Causes for Purging Moo Jung and His Reactions

상세내역
저자 안문석
소속 및 직함 전북대학교
발행기관 통일연구원
학술지 통일정책연구
권호사항 24(1)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149-175
발행 시기 2025년
키워드 #무정 숙청   #연안파   #김일성 체제 전복   #김일성 유일체제   #명령 불복종   #군벌주의적 만행   #안문석
조회수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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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북한이 공간자료에서 밝히고 있는 무정을 숙청한 이유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이 후퇴하는 과정에서 평양을 방어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제대로 집행하지 않았다는 것과 후퇴하는 과정에서 법적 절차 없이 사람을 총살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천 상륙작전 이후 대대적인 후퇴 중, 명령체계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무정이 적은 병력으로 평양을 방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또, 대열 이탈자는 즉결처분하라는 김일성의 명령이 하달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무정이 무단이탈자를 총살한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없었다. 결국 전쟁 중에 전격적으로 진행된 무정에 대한 숙청은 북한이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이유보다는 김일성 세력이 패전의 책임을 전가하면서 동시에 오랜 정적을 제거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숙청에 대한 무정의 대응과 관련해서는 무정이 일찍이 1948년 중반 즈음에 지지 세력을 모아 김일성 체제를 전복하려 했다는 미군 정보보고서의 보고도 있지만, 구체적인 증거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무정은 오히려 전격 숙청에 전혀 대응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제거되는데, 여기에는 세 가지 원인이 있었다. 첫째, 연안에서 귀국하던 도중 선양에서 국민당의 공격을 받았을 때, 홀로 무장트럭을 타고 탈출하면서 연안파 내부에서 인망을 상당 부분 잃게 되었다. 둘째, 연안 시절부터 있었던 연안파 내부의 분열로 무정이 자파 세력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셋째, 전형적인 무인기질의 무정은 정국을 파악하고 소련과의 연계를 형성하는 데 필요한 정치적 전략에 능하지 못했다. 이런 배경 속에 이루어진 무정에 대한 숙청은 북한정치사에서 이후 이루어진 허가이, 박헌영 등에 대한 숙청과 이를 기반으로 한 김일성 유일체제 확립의 출발선이라는 입지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