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하다시피 해방 이후 1946년을 지나며 남한 내 정치적 상황은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 이러한 시기 즉, 소위 “좌익 전횡기”를 지나 좌우익 간의 갈등기로 접어들며 직면하게 된 여러 문제에 대해 조선문학가동맹은 어떻게 대응했는가. 본고는 『토지』를 통해 그 대응 양상의 실제적 한 예를 확인하고자 한다. 『토지』는 조선문학가동맹 특수위원회 농민문학위원회가 1947년 7월에 펴낸 소설집이다. 조선문학가동맹은 1947년에 이르러 집중적으로 다양한 간행 사업을 진행한 바 있는데, 『토지』는 연속 간행물로 기획된 1946년판 『조선소설집』(1947. 6. 20.), 『조선시집』(1947. 3)과 더불어 이 시기 조선문학가동맹의 활발한 출판 활동을 보여주는 주요 사례이기도 하다. 『토지』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그 편집자이다. 『토지』의 편집자는 조선문학가동맹 특수위원회 농민문학위원회로 명시되어 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이 위원회가 조선문학가동맹 결성 당시 조직도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농민문학위원회는 『문학』3호(1947.4)에 수록된 「농민문학운동에대한결정서」 및 「조선문학가동맹농민문학위원회내규」를 통해 비로소 그 결성이 공식적으로 확인된다. 즉, 농민문학위원회는 1946년을 지나며 급격하게 나빠진 남한 내 정치적 상황의 변화, 당면한 쟁점이자 과제인 토지개혁 문제, 악화된 상황 타개를 위한 활동 방안으로서 제기된 대중화론 등 여러 사정과 필요에 따라 뒤늦게 일 특수위원회(一 特殊委員會)로 긴급히 구성되었던 것이다. 『토지』의 편집진이 밝힌 편집의 기준은 ①작가의 특성 ②작품의 영원성 ③오늘날의 시급한 요청 등 세 가지이다. 작가의 특성이 일련의 조건에 의거한 작가의 안배를, 작품의 영원성이 그 완성도를 말한다면, 오늘날의 시급한 요청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토지』의 간행사에는 “책”과 “땅”이 반복적으로 강조된다. 이때 책이 문화적 향유 및 생산의 주체로서의 대중을 가리킨다면 땅은 농경지, 보다 직접적으로는 토지개혁 문제를 가리킨다 하겠다. 이는 “토지 개혁이 남조선엔 아직 실시되지 못”하였음을 지적하는 구절을 통해 더욱 선명해진다. 즉, 『토지』는 일련의 조건에 의거해 안배된 작가들의, 토지개혁 문제와 관련된 완성도가 높은 작품을 모은 것이라 하겠다. 『조선소설집』과 『조선시집』이 연간 연속 간행물로 기획되었다면, 『토지』는 당대의 뜨거운 감자였던 토지개혁 문제를 전면에 부각시키며 이를 통해 문제적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문학적 실천을 이끌어 내고자 한 특별한 의도의 산물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토지』는 우선 편집 단위에서 작품의 배치를 통해 남한 사회 현실의 모순 인식 및 대중의 인간적‧계급적 자각을 꾀한다. 북한 토지개혁의 성공적 측면을 첫머리에 제시함으로써 이를 이루어야 할 전범으로 설정한 후, 이와 괴리된 남한 현실의 모순을 직시하게 만듦으로써, 『토지』를 순서대로 읽다 보면 ‘가 닿아야 할 미래의 상-부정적인 현실-변화의 당위성’을 거쳐 ‘변화를 위한 실천과 각오’에 대한 요구를 맞닥뜨리게 된다. 또한 『토지』 속 인물들은 대개 소박하고 평범하며 그 갈등 양상 역시 이들 농민들이 직면한 현실적인 문제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지주 대 소작인 사이의 계급적 대립과 격렬한 충돌 및 투쟁 대신 문제적 현실에 대한 공분과 이를 공유하는 소소한 인민대중들의 유대감이 보다 강조되는데 이는 근로대중과의 괴리에 대한 당대 대중화론의 고민과 맞닿은 지점이기도 하다. 요컨대 『토지』를 통해 조직의 재정비(농민위원회의 신설 및 그 상위 단위로서의 특수위원회 구성), 당대 최고의 정치적 이슈이자 대중적 관심사이던 토지개혁에 대한 문학적 수용, 해방기 대중화론의 창작적 적용(인물과 갈등의 특성 및 작품의 배치) 등을 확인할 수 있으며, 바로 이런 점에서 『토지』는 조선문학가동맹이 급변하는 정세에 맞서 어떤 문학적 대응을 모색했는가를 살펴보는 데 있어 중요한 하나의 참고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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