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1960년대 초 북·소 관계가 악화되고 남한에서 5·16 군사정변이발생하자 1962년부터 ‘국방에서의 자위’ 정책을 천명하고, ‘4대 군사로선’을 추진하는 등 군사주의적 경향을 강하게 나타냈다. 특히 미국의 베트남전 확전, 북·중 관계 악화 등 안보 위협이 심화된 1966년에는 경제· 국방건설 병진노선을 강화하고 군사비를 대폭 증액시켰다. 이러한 군사력 강화 정책은 군대의 정치적 참여 확대 및 군사주의의 제도화로 이어졌다. 또한 군부의 정책결정 영향력 증대와 군사력 강화는 김일성의 한반도 혁명 완수 의지와 맞물려 1968년 전후 1·21 청와대 습격사건과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등 공세적·군사적 모험주의를 추구한 배경이 되었다. 또한 군사주의의 확산은 경제발전전략의 변화를 가져왔으며, 특히 군사력 건설이 국가 정책에서 특별한 우선권을 지니게 되었다. 이러한 모습이 정책화되어 등장한 것이 바로 ‘경제·국방건설 병진노선’이었다. 북한 주민들 역시 ‘중공업 우선 발전론’과 ‘군중동원을 통한 속도전식경제성장’, 한반도 혁명 완수를 위한 ‘전민 무장화’에 따라 군사주의에물들어져 갔다. 1960년대 북한의 군사주의는 안보 위협에 대한 인식, 김일성의 혁명 완수 의지가 결합하며 사회 전 부문에 군사주의적 정향이최고조에 다다른 시기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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