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는 소련의 영향을 중심으로, 북한의 체제 형성 초기 조직되었던사회주의 청년단체인 ‘조선민주청년동맹(이하 민청)’의 결성 배경을 고찰하고자 한다. 1920년대로부터 소련은 코민테른을 통해 각국 공산당 및조선의 공산주의 활동에 영향을 미쳤다. 레닌 집권 시기 코민테른의 공산주의청년동맹 정책은 젊은 세대에 대한 공산주의 사상 교양과 공산주의청년동맹의 조직을 당의 예비군 및 조력자로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따라서 공산주의청년동맹은 당이 근로자 대중조직을 인입하는 데 조력하는조직으로 기능했다. 국내에 단일한 공산당 결성 시도가 지속적으로 실패하던 상태에서 공산주의 청년활동은 산발적으로 진행되었다. 한편 세계사회주의화라는 코민테른의 기조는 레닌 사후 소련 수호 우선시 정책으로 변화했다. 특히 1935년 개최된 코민테른 제7차 대회는 파시즘에 대항한 광범한 반파시즘 인민전선의 형성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반파시즘투쟁을 목적으로 한 공산주의청년동맹과 사회주의청년동맹의 연합 결성이 제기되었고, 스페인, 라트비아 등에서 청년들의 반파시즘적 연합활동이 전개되었다. 1936년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서기국 회의는, 공산주의청년인터내셔널의 임무를 ‘공산주의적 청년조직을 근로청년의 광범한 대중조직’으로 전환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반파시즘적 대중단체를 표방한 코민테른의 청년동맹 정책은 1930년대 이후 입국한 일부 소련 공산대학출신 토착 공산주의자들의 협력하에, 해방 이후 소군정과 함께 입북한김일성의 주도로 실천되었다. 결성 초기부터 공산주의 성향을 드러내었던 소련의 콤소몰과는 달리, 대중성을 표방한 민청은 공산주의 청년활동가들을 주축으로 했으나 원칙적으로 모든 청년층에 개방되었다. 민청의대중성은 이후 북한의 청년동맹이 모든 청년을 포괄하는 최대 규모의 사회단체로 성장하는 기반이 되었다. 반면, 당과 민청의 직접적 지도 관계가 공식화되는 것을 지연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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