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무기한 휴회에 들어간 지 한 달 뒤인 1946년 6월, 소련대표단 단장 슈티코프는 소련 지도자 스탈린과 외무상 몰로토프에게 「조선에서의 소미공동위원회 활동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에 첨부된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명의의 결의 초안은 7월에 대부분 채택된다. 소련주둔군과 북한 지도부는 남한에서 ‘반동’에 맞서는 적극적인 활동을 벌이고, 북한에서 중요산업 국유화, 군사력 강화, 각급 인민위원회 선거 등 국가의 토대를 만드는 개혁조치들을 단행했다. 1946년 여름을 경계로 국제적 협상과 타협에 의한 단독정부 수립의 길은 사실상 차단되었으며, 이를 대신해서 분단과 통일의 문제를 한반도민 스스로 떠안게 되는 한반도 문제의 한반도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 북한에서의 군사력 강화는 만주에서 열세에 놓인 중국 공산군의 피난처를 제공하고 이들을 적극 후원할 후방 기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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