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25일, 민족상잔인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과거 이 전쟁에 대해 남침이냐? 북침이냐 하며 학계에서 논쟁이 분분했지만 냉전 후 러시아당안이 해제되면서 결국 남침으로 결론이 났다. 김일성은 전쟁에 대한 스탈린의 지지를 얻었고 모택동의 동의도 받아 낸 것이다. 모택동이 지지한 원인은 냉전시기 같은 사회주의진영 속에서 서로 지지해야 한다는 대의도 있었지만 동북전쟁시기 중공은 북한정부의 아낌없는 후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중공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많은 군대를 파견하여 북한을 도왔을 뿐만 아니라 북한난민을 중국경내에 대량으로 받아들여 안치하고 부양했다. 당시 중국도 국내전쟁이 금방 끝난 상황에서 국내경제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었지만 북한난민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중국경지역에 북한난민을 접수하기 위한 전문기구를 설치하고 북한난민을 계획적으로 받아들여 처리했던 것이다. 특히 북한전쟁고아들을 위해 학교를 세우고 교육까지 시키면서 모든 경제생활을 부담했다.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난 후에도 많은 북한난민들은 북한을 돌아가지 않고 여전이 중국에 남아 있었다. 그러자 중국정부는 북, 중 국경관리를 허술하게 하면서 그들이 수시로 북한으로 돌아갈 수 있게 조건을 지어 주고, 심지어 귀국 여비까지 마련하여 주었다. 또한 북한정부가 경제건설에 박차를 가하면서 노동력이 모자라 조선교민들을 포함해 중국국적을 가진 조선족까지 설득하여 북한에 보내 줄 것을 요청하자 중국정부는 흔쾌히 이에 동의하고 1958년 전후하여 많은 조선교민과 조선족을 북한에 보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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