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후계자로 확정된 후 김정일은 주체사상의 체계화와 유일사상체계 확립을 주도했고, 노동당과 군대, 정권기관에 유일지도체계를 수립했다. 김정일은 1세대들의 강력한 지지를 바탕으로 후계자로 등장한 후 2세대들의 뒷받침을 받아 1세대들이 이룩한 성과를 사상·이론적으로 체계화하고, 당·정·군 등의 운영 지침서를 마련함으로써 현재 북한의 당·국가시스템을 완성했다. 따라서 북한 역사에서 김정일과 김정일시대를 객관적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개인 김정일에 초점을 맞추는 시각 외에 북한 ‘2세대'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김정일을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그의 성장과 권력 장악은 ’빨치산 1세대'의 각별한 관심과 ‘혁명2세대'들의 뒷받침 속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김정일이 첫 연설을 한 1967년 조선노동당 제4기 15차 전원회의가 주목된다. 이 연설은 김정일이 권력의 전면에 나서는 서막이자 ‘혁명2세대’들이 세대교체를 통해 노동당의 핵심층으로 부상하는 신호탄이었다. 또한 이 전원회의는 김일성 유일 사상체계 확립에 소극적이었던 박금철, 이효순 등의 ‘갑산파’가 제거되고 당 내에 유일사상체계가 확고하게 자리 잡는 출발점이 되었다. 이 전회회의에서 첫 연설 후 7년이 지난 1974년 김정일은 후계자로 공식 결정됐다. 1960-70년대에 형성된 북한의 ‘수령제 정치체제’는 1956년 ‘8월종파사건’을 계기로 조직적, 사상적으로 강화 과정을 거쳐 1960년대 후반에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고, 1970년대에 들어서는 수령의 유일적 영도체제를 기본으로 해서 후계자 김정일의 유일지도체제가 구축되면서 완성됐다고 할 수 있다. 유일지도체제가 구축된 후 김정일은 김일성 생존 시에도 실질적으로 북한의 최고실권자였다. 김정일은 1970년대의 준비 과정을 거쳐 1980년대에 들어서는 북한의 당·정·군을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었으며, 사상 방면에서도 이미 최고지도자로 부각되어 있었다. 1994년 김일성이 갑작스럽게 사망했음에도 최고지도자의 승계과정에 큰 혼란이나 혼선이 없었던 이유이다. 후계체제 구축과 ‘수령’의 사망을 한 차례 경험했던 북한은 3년이란 짧은 기간에 김정은 후계체제를 확립할 수 있었고, 2011년 김정일의 갑작스러운 사망에도 큰 혼란 없이 권력승계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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