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련계 재일조선인은 1959년 공화국 측의 1차 귀국 사업에 부응하면서 ‘민족 이야기’에더욱 집착한다. ‘민족’에 집착해 온 그들이 민족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 것이다. 그 이야기의 대부분은 공화국으로부터 건네진 것이고, 재일본조선인문학예술가동맹 측 시의 분명한 창작 동력이 되어주었다. 그때부터 문예동 시인들은 수령이나 공화국에 대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행위에 돌입한다. 지상 낙원인 공화국에 대해 이야기할 때 고향의 기억이선명해졌고, 민족적 정체성도 분명히 감지됐기 때문이다. 이 순간 쓰이는 그들 시에서고향 강원도나 제주도 등에서 노닐던 유년기의 노스탤지어도 강하게 일어났던 것이다. 동포 집단 이데올로기의 외부에 존재할 것이라 생각된 ‘민족’, 그래서 민족적 정체성의원본이 되어줄 것이라 믿어진 민족은 공화국 이야기가 선재(先在)해줄 때만 나타나는민족의 시뮬라크르였던 것이다. 본 연구는 이 맥락을 신형기가 ‘북한문학론’에서 언급한‘이야기론’을 참조하고 데리다의 에크리튀르 이론을 간접 원용하면서 살펴보고자 하였다. 아울러 이를 분석할 수 있는 틀로서 ‘이야기정체성’ 문제에 대해 주목하였다. 이를 위해 총련계 류인성과 고봉전의 시에 주목하였다. 류인성의 시에서는 공화국 측이야기를 반복할 때 유년의 장소가 강하게 환기된다. 그가 돌아가고자 하는 고향 강원도는, 공화국의 이야기나 수령의 항일혁명 등의 이야기 속에서만 ‘순수한’ 민족적 정체성을드러낸다. 가령 류인성 시에 나타난 “제비” 모티프와 “귀로”의 상상력은 어머니와 할머니가 있던 유년의 강원도로 회귀하려는 시인의 발걸음이 공화국의 낙원으로 돌아가는 발걸음과 다른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고봉전 또한 공화국 이야기를 반복하면서 어린 시절의눈부신 제주 바다 속으로 들어간다. 그 순수의 자리에서 그가 본 것은 제주도의 푸른바다처럼 일어나는 공화국의 건설현장이었다. 그는 공화국의 속도전 사업에 헌신할 때열리게 될 주체조선의 이야기와 수령의 교육전사로 활동하는 동포들의 이야기까지도반복한다. 이야기가 순환하는 이 순간에 경험되는 그의 ‘민족적 정체성’ 또한 궁극적으로상기 ‘이야기 정체성’과 다르지 않은 것임을 밝히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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