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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桓雄天王과 檀君王儉에 대한 역사민속학적 고찰

Historical and Ethnographical Accounts on Hwanung Cheonwang and Dangun Wanggeom

상세내역
저자 최광식
소속 및 직함 고려대학교
발행기관 고려사학회
학술지 韓國史學報
권호사항 (60)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107-134
발행 시기 2025년
키워드 #환웅천왕   #단군왕검   #삼신신앙   #농경신화   #건국신화   #최광식
조회수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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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내역
초록
역사학에서는 고조선을 건국한 건국자 단군에 중점을 두어 단군신화라고 표현하며, 민속에서는 농경생활을 시작한 환인과 환웅 그리고 단군 세 존재 모두에게 숭배를 하고 가신으로서 모셔 의례를 행하고 있다. 역사학에서는 국가에 관심을 갖고 건국신화를 중요시한 것이며, 민속에서는 가정에 관심을 갖고 가신신앙으로 숭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삼국유사』 고조선조의 내용은 분명히 환웅이 주인공이며 농경생활에 대한 내용이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단군의 존재와 건국에 대한 내용은 그 결과로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삼국유사』의 단계에서는 환웅이 신화적 존재이므로 환웅신화, 그리고 단군은 인간적 존재로서 기록되어 있으므로 단군왕검으로 인식하고 표현하는 것이 객관적 표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제왕운기』에서 제왕들의 이야기를 다루다보니 환웅보다는 단군에 초점이 두어지게 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신이한 존재인 환인이나 환웅보다는 인간적 존재인 단군을 역사적 존재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개화기에도 이어졌으나 대종교에서 단군을 신격화하면서 민족주의 사학에서 단군신화라는 명칭이 고착화하게 되었다. 특히 일인 사학자들의 단군에 대한 연구가 전설과 설화로 취급하는 가운데 일본의 건국신화인 天照大神 신화에 대응하기 위하여 桓雄神話라고 하지 않고 檀君神話라고 부르게 된 것을 알 수 있다. 일제 강점기 식민지를 극복하기 위한 민족정신을 앙양하려고 하였던 민족주의 사학자들은 단군을 민족의식의 구심점으로 삼고자 하여 단군에 주목하고 단군을 신격화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해방후 근대 국민국가 건설을 하는 과정에서 고대 국가의 건국자 단군을 국가주의적 관점에서 활용하고자 이른바 네이션빌딩 과정에서 환웅신화를 단군신화라고 부르게 된 것이라 하겠다. 한편 북한에서는 단군을 설화나 전설 또는 신화라고 하다가 1993년 소위 ‘단군릉’ 발굴 이후 인간적 존재로 인식하여 민족의 구심점으로 삼으려는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였다. 역사학에서는 농경신정을 주재하는 환웅보다는 건국자인 단군에 주목을 하고 있는 반면에 민속에서는 인간 탄생을 농경신과 관련하여 환인, 환웅, 단군 세 존재를 모두 숭배하고 있는 점이 다르다고 하겠다. 따라서 민속학에서는 국가를 강조하면서 단군의 건국신화에 주목한 역사학과 달리, 가정을 강조하면서 생산과 탄생의 삼신신앙에 주목하였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