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점점 더 축적되고 있지만, 북한 역사학계가 러시아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그 동안 본격적인 연구가 시도되지 않았다. 그 대신 우리나라의 많은 학자들, 특히 한국사를 전공한 역사학자들은 주로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북한 역사학이 마르크스주의-레닌주의에 토대를 두고 성립되었다가 주체사관으로 전환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보기에, 북한 역사학의 토대가 마르크스주의-레닌주의라기보다는 정확히 말해 스탈린주의 역사학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 점은 북한 역사학이 표방하고 있는 ‘당성의 원칙’과 ‘역사주의의 원칙’에서 명확히 드러나 있다. 역사의 동력이라는 측면에서 전자는 주관적인 요인을 가리키는 것이고 후자는 객관적인 요인을 지칭하는 것이지만, 스탈린 시대에 스탈린이 역사해석의 권한을 독점했듯이 이 두 요소를 결합시킬 수 있는 권한은 주체사관의 핵심인 수령에게 있다. 따라서 북한 역사학은 스탈린주의 역사학에 그 근본을 두고 있고, 주체사관이 표방되고 있는 요즈음도 스탈린주의 역사학의 중요한 측면들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력사사전과 몇 종의 고등중학교 세계사 교과서를 통하여 북한 역사학계가 소련사를 포함한 러시아역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살펴본다면, 이 점은 명확히 확인된다. 그 내용을 러시아 혁명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보자면, 북한 역사학은 러시아 혁명과 직접 관련이 없는 주제나 인물에 대해서는 과거 스탈린시대처럼 민족주의적인 기준들을 부분적으로 적용하여 심지어 일부 차르들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서술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과 관련해서는 사회주의의 승리로서 기술되고 있으며, 특히 혁명 전후의 모든 사건들이나 인물들이 스탈린과의 관련성을 통하여 평가되고 있다. 현재 북한에서는 스탈린이 시도한 공업화와 농업집단화는 아주 긍정적으로 기술되고 있는 반면에, 흐루쇼프가 시도한 정책 혹은 고르바초프의 개혁과 개방은 강력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냉전 성립의 한 축이 스탈린주의라고 한다면, 세계사적 틀에서는 냉전이 종식되었지만 북한의 러시아사 인식 속에서는 여전히 냉전적 요소를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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