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당시 주목할 만한 활약을 벌였고, 해방 직후 북한지역에서 김일성 못지않은 입지를 가지고 있었던, 그러면서도 그동안 제대로 조명이 되지 않았던 무정의 정치노선을 집중 탐구한다. 무정은 중국공산당에서 오랫동안 항일투 쟁을 했고, 북한에 들어가 당과 군에서 활동했지만, 이념적으로 공산주의자라기보다는 철저한 민족주 의자였다. 공산주의를 실현하는 것보다는 민족의 완전한 독립이 우선이라고 여겼다. 그가 중국공산당의 2만 5천리 대장정에 뛰어들고, 팔로군의 간부로 오랫동안 활약한 것도 ‘중국의 승리를 통한 조선의 독립’이라는 목표를 향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팔로 군의 포병여단장이 되어 중국공산당에서 나름의 위치를 확보한 뒤에는 한인들을 규합해 대일투쟁에 나섰다. 해방 후 김일성과 맞선 것은 소련을 등에 업고 권력을 얻으려는 행태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의 민 족주의 노선은 소련이라는 외세도, 외세의 지원을 받고 있던 김일성도 배격의 대상으로 간주했다. 그의 철저한 민족주의는 김일성과의 경쟁·권력투쟁의 출발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무정은 또한 조선의 완전한 독립을 위해서는 모든 세력, 모든 계급이 하나로 모이는 것이 중요하다며 민족통일전선을 내세웠고, 대일투쟁 역량 강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연대도 꼭 필요한 것으로 주장했 다. 그는 또한 철저한 공동체의식을 지니고 있었고, 이는 식량의 균등분배와 같은 형식적 평등주의로 표현되기도 했다. 민족의 통일과 관련해서는, 전쟁을 피하면서 대화를 통해 평화적 통일을 이루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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