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염상섭의 해방기 첫 장편소설인 『효풍』을 해방기 정치ㆍ경제적 맥락과 서사적 특성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효풍』은 전반부의 서사와 후반부의 서사가 이질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듯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서사의 비균질성은 작품의 완결성이 결여된 것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지만, 『효풍』에서는 동시대 역사적 현실에 대한 작가의식이 징후적으로 드러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작가가 해방기 혼란한 시대현실을 신문연재 소설로 서사화함으로써, 동시대 현실의 우발적 성격이 서사의 전개와 주요 인물들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따라서 『효풍』 서사의 비균질성은 해방기 특수한 현실을 동시대적으로 서사화함으로써 불가피하게 나타난 주요한 특성으로 간주할 수 있다. 작품의 전반부는 병직, 화순, 혜란의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서사가 전개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병직’이 실종되어 서사에서 사라지게 되고, 결말부에 갑작스럽게 재등장하여 끝을 맺게 된다. 이로 인해 전반부의 주요 인물관계인 병직, 화순, 혜란의 삼각관계는 와해되고 서사는 파행적으로 흘러가게 된다. 이는 5ㆍ10선거와 단정수립이라는 역사적 사건 및 염상섭의 신민일보 구류사건이 서사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짐작된다. 『효풍』의 중반부에서 병직이 실종된 이후 그의 공백을 메우며 서사를 이끌어가는 것은 혜란과 ‘금전적 유대’를 맺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영어’라는 새로운 권력의 언어를 매개로 연결되어 있으며 해방 정국의 새로운 지배세력인 미국과의 ‘한미무역 문제’가 부각된다. 전반부의 서사가 남한과 북한 간의 정치적 이념의 대립 양상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면, 후반부의 서사에서는 남한과 미국 간의 무역을 중심으로 한 경제적 관계가 중요하게 나타난다. 『효풍』 서사의 무게중심이 남북간의 문제에서 한미 문제로 전환된 것은 이 작품이 동시대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혜란과 ‘금전적 유대’로 맺어진 인물들은 인종적, 언어적, 이념적인 측면에서 혼종적인 성격을 지니며 한국과 미국 양 측에 모두 깊이 관여하고 있다. 특히 미국인 베커와 혜란의 관계는 미국과 조선의 관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염상섭의 『효풍』은 식민지 시기부터 염상섭의 작품세계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 ‘돈’과 ‘애정’이라는 두 축이 해방기에서도 유사하면서도 차별화되어 나타난다. 더 나아가 『효풍』의 후반기 서사는 해방기새로운 지배세력으로 등장한 ‘미국’의 영향력과 그 변모 양상을 상세하게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염상섭의 해방기 작품에서 ‘무역’과 ‘적산’의 문제가 두루 등장하는 것도 미국에 대한 작가의 문제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