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성곽 명문기와는 성곽의 활용문제를 밝혀줄 중요한 금석문 자료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 年號銘 기와는 평기와의 편년 설정에 하나의 기준이 되는 자료이다. 따라서 고려성곽 명문기와는 현 남북한의 상황에서 고려시대 성곽의 축조 및 활용문제를 전반적으로 규명할 수 있는 중요한 연구자료라고 생각한다. 본 연구는 남한지역의 고려성곽에서 출토된 年號銘 기와의 성격에 대해서 검토하였다. 남한의 고려성곽에서 출토된 연호명 기와는 ‘峻豊四年’(광종 14년:963), ‘乾德三年’(광종 16년:965), ‘太平興國七年·八年’(성종 1·2년:982·983), ‘大平八年’(현종 19년:1028)·‘大平十年’(현종 21년:1030)·‘大平十五年’(정종 1년 :1035), ‘正豊二年’(의종 11년:1157), ‘至正十八年’(공민왕 7년:1358)으로 6개의 연호가 확인되었다. 그리고 출토된 성곽은 음성 망이산성(峻豊四年, 太平興國七年·八年), 평택 비파산성(乾德三年), 부여 부소산성(大平八年), 진도 용장성(大平十年), 사천 선진리성(大平十五), 청주 청주읍성(大平), 부산 당감동성(大平), 마산 회원현성(正豊二年), 인제 한계산성(至正十八年) 등 9개 성곽이다. ‘峻豊四年’, ‘乾德三年’, ‘太平興國七年·八年’銘 기와를 통해 고려 광종의 호족 견제 및 왕권강화 정책이 성종 때까지 이어졌음을 확인하였다. ‘大平八年’·‘大平十五’銘 기와를 통해 고려 현종 때 내륙에서 출토된 연호명 기와와 창고건물지가 확인된 성곽들은 조세를 거둬들여 보관하는 기능과 역로망을 감독하는 관리 혹 창고를 지키기 위한 군사집단이 거주하였던 곳으로 볼 가능성과 남해 연안에 축성된 성곽은 漕運과 관련된 倉城이 존재했을 가능성에 대해서 견해를 제시하였다. ‘正豊二年銘 기와를 통해 고려 고종과 원종 년간에 왜구들에 대한 대비 혹은 몽골의 일본원정기지로의 개축되었을 개연성을 살펴보았다. ‘至正十八年’銘 기와를 통해 고려말 왜구가 강원도 지역을 침략하자 이에 대비책으로 고려 정부가 인제 한계산성을 활용하면서 인근의 사찰 혹은 관청 등의 기와를 성 내부 건물에 사용했을 가능성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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