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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한말 황해도 殷栗郡 南上里坊 호적표로 본 가족과 마을

Family and village known through family register of Namsang-ri(南上里), Eunyool-gun(殷栗郡), Hwanghae-do(黃海道) in the end of Korean emp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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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정주
소속 및 직함 단국대학교
발행기관 역사연구소
학술지 史叢(사총)
권호사항 (81)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155-181
발행 시기 2025년
키워드 #남상리(南上里)   #은율군(殷栗郡)   #동성촌락(同姓村落)   #양자(養子)   #이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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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논문은 1902년에 만들어진 황해도 은율군 남상리의 호적을 분석한 것이다. 남상리는 북한의 5대 명산 가운데 하나인 구월산 기슭에 위치한 지역으로 19개의 자연촌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호적의 몇몇 오류를 수정하고 미기재분을 보완한 결과, 남상리 호적에는 전체 266호, 남자 683인, 여자 503인, 합계 1,186인이 기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인구수는 전후 시기에 비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였다. 즉 남상리 호적은 인구의 누락율이 높아 연구 대상으로서는 많은 한계가 있는 자료였다. 분석 결과 남상리의 가족은 철저하게 부계 친족 위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가족 구성원 가운데 모계 및 처계 친족은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여성 호주도 전혀 없었다. 같은 시기 다른 지역에서 여성 호주의 비율은 대략 5~10%정도였다. 아들이 없거나 아니면 미성년자일 경우, 여성 보호자도 호주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남상리에서는 여성 호주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대신에 미성년 남성이 호주가 되거나 남편의 형제가 호주 역할을 했다. 남상리의 19개 자연촌 가운데 무려 16개의 촌락이 특정 성씨가 50% 이상을 점하는 동성촌락이었다. 사실상 동성 촌락으로 이루어진 지역이었다. 동성 촌락은 확고한 사회경제적 우위를 가진 특정 성씨가 다른 성씨를 배제하면서 나타난 산물이었다. 동성 촌락으로 존립하기 위해서는 남성 위주의 상속을 통한 부계 혈연 구성원의 이주 제한과 양자 제도의 활성화, 그리고 문중의 발달이라는 조건이 필요하였을 것이다. 남상리 호적에는 시집온 여성들과 외조의 본관이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또한 여성 호주도 없었다. 약 10.9%의 가호에서 양자에 의한 혈연 계승이 이루어졌으며, 대부분의 자연촌이 동성 마을이었다. 은율군 남상리는 유교의 영향으로 부계 남성 위주의 가족형태가 철저히 유지된 지역이었던 것이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