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과 태도로서 ‘내재적 발전’은 1960년대 들어 3국의 현실과 조응하며 더욱 숙성해 갔다.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 수립의 합법칙성을 해명하는 차원에서 조선사의 체계를 완성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식민사관을 규명하고 비판하였다. 일본과 한국에서는 식민사관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자신의 새로운 역사상을 모색해 갔다. 상대적으로 일본의 조선사연구회 회원들이 한국의 한국사 연구자보다 더 철저히 식민사관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하였다. 일본의 재일조선인과 일본인 연구자는 북한과 남한의 학문을 연결하는 매개자였다. 북한과 일본 간의 네트워크는 조직을 매개로 이루어졌다. 상대방의 학문적 성과에 대한 검토도 공식적이고 체계적이었다. 남한과 일본의 연계는 직접적, 개별적 관계가 중심이어서 전면적인 검토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1960년대 한국사 연구의 최대 성과는 한반도의 역사에서 봉건제가 있었으며, 조선은 봉건사유제 국가였다는 해명이다. 조선후기를 봉건제 해체기로 규정한 것이다. 그러나 철저한 자기 점검이 없었으므로 학문권력인 문헌고증사학과 식민지 잔재인 3분과체제를 극복하지 못하였다. 식민적 공공성을 넘어 민주적 공공성이 형성될 여지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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