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전시기 조선인 강제동원의 역사가 해방 후 피해 보상체계를 거치면서 어떻게 규범화하고 정의되었는지,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어떤 모순점들을 잉태했는지를 명확히 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따라서 시기적으로 해방 직후부터 한일청구권협정을 거쳐, 민간청구권보상체제가 성립되어 보상을 이룬 1970년대까지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해방 직후 미군정은 식민지기 원호회를 해산하면서 강제동원 피해자의 원호금을 일정 정도로 보상했다. 이후 1948년 한국정부 수립 이후에는 정부 스스로가 1949년 인구총조사를 실시하면서, 징용, 징병, 미귀환, 사망 등도 함께 조사했다. 한편, 귀환자들 사이에서도 스스로 징용, 징병에 의한 미수금, 사망, 부상 등 피해사실을 조사하여 국회와 정부에 보상을 요구했다. 그리고 미귀환의 문제, 유골봉환 등의 문제를 일본정부에 진정할 것을 요구했다. 한국정부 역시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한일청구권협정 준비를 해나갔다. 한국정부는 1952년 이승만 정권에 의해 피징용자 사망 및 부상자 조사, 1958년에는 피징용자 조사를 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한국에서 조사된 것은 한일청구권협정 당시 중요한 자료로는 사용되지 않았다. 한일청구권협정 논의단계 속에서 살펴보면 강제동원 피해의 범위는 한국과 일본 정부 모두 군인, 군속 및 식민지기 원호체계에서 규정했던 노동자, 즉 1942년부터 동원된 관알선, 징용 노동자의 범위로 규정하고, 그 범주에서 피해규모를 산정했다고 추측된다. 한일청구권협정 이후 한국 내에서 청구권보상이 현실화 된 것은, 일본에서 받은 자금을 사용하기 위해 제정한 「청구권 자금의 운용 및 관리에 관한 법」과 그에 따른 「대일민간청구권 신고에 관한 법」과 「대일민간청구권보상법」이다. 위의 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청구권’의 성격과 ‘청구권 자금의 성격’에 대하여 규정을 했다. 한국정부는 정치적 상황에 따라 이중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한일청구권협정의 성과를 선전할 때는 ‘청구권’을 식민지 피해 전반에 대한 것으로 해석하고 ‘청구권 자금’은 식민지기 국민이 받은 피해에 대한 보상이라고 했다. 따라서 청구권자금은 개별적 보상이 아닌, 민족의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독립운동가에 대한 추모사업과 경제개발에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에 대해 야당은 한일청구권협정에서 피징용자의 사망자 부상자 및 미수금을 대상으로 받은 자금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개별보상이 있어야 한다고 반발했다. 정부는 여론도 있고 해서 개별적 민간청구권 보상체계를 만들어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정부는 청구권은 ‘재산상의 피해 청구’를 말하는 것으로 신체적,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보상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피징용자 사망 및 부상에 대한 보상은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 문제는 “피징용자 사망자”와 금전적 피해인 “미수금”만을 보상하는 것으로 여야가 합의하여 보상하기로 결정했다. 이 보상체계에서는 ‘속지주의’와 ‘증거주의’를 내세웠다. 일본과 한국 지역의 금액권으로 국한하고 증거가 확실한 것만을 보상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지역에 본점을 두고 있는 은행권 및 우편저금 등은 보상의 대상이 되지만, 한국과 일본 지역을 제외한 일본점령지역에서의 금융권은 보상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결국, 우편저금이라고 하더라도 전장지에 본사를 가지고 있던 군사우편저금은 보상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군표 역시, 1945년 9월에 태평양 및 육군사령부 포고 제2호의 규정에 의해 무효무가치처분이 내려져서 보상에서 제외되었다. 한편, 피징용 사망피해는 속지주의 원칙이 아니라, 유족의 국적주의를 내세웠다. 즉, 피징용자 피해지역은 일본과 한국 뿐 아니라, 사할린, 남양지역, 북한, 중국 등에서의 피해도 한국 국적을 지닌 유족이 신고 가능하게 했다. 현재 한국에서 실시되고 있는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 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법」이 1970년대의 대일민간청구권보상체제를 기원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 지원법이 규정하고 있는 국내동원이나 국외동원으로 나눈 것은 적어도 이 「대일민간청구권보상법」속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와 더불어, 사할린 한인의 경우도 미귀환의 문제는 남아있다고 하더라도, 사망자에 대한 보상 및 미불금 관련 보상에 대한 청구권은 역시 당시에 해결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현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 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법」의 지원대상의 제한에 대해서는 보다 역사적으로 면밀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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