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꽃 파는 처녀』는 이른바 ‘불후의 고전적 명작’으로 통하는 작품이다. ‘불후의 고전적 명작’은 북한식 문학예술의 한 범주로 연극과 가사 등 김일성 및 김정일의 창작과 지도로 만들어진 ‘항일무장투쟁기’의 혁명예술들을 가리킨다. 불후의 고전적 명작으로는 『피바다』・『한 자위단원의 운명』・『성황당』・『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꽃 파는 처녀』 등이 있다. 이들 작품은 대개 연극과 혁명가극(북한식 오페라)은 물론 영화와 소설로 제작되는 등 대부분 장르적 변용과 확장이 이루어졌다. 『꽃 파는 처녀』에 대한 연구는 주로 가극과 영화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으며 1977년 4・15창작단에 의해 장편소설로 만들어진 소설 텍스트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는 아직까지 시도되지 않았다. 『꽃 파는 처녀』는 연극・가극・장편소설・아동문학・화폐의 도안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주로 활용되는 북한식 이념의 문화콘텐츠 곧 혁명의 원소스멀티유즈라 할 수 있다. 『꽃 파는 처녀』는 연극・가극・영화 등 복잡한 경로를 거쳐 소설이 된 작품이다. 이런 복잡한 텍스트 형성 과정과 역사로 인해 오히려 그것은 북한문학의 특수성을 살펴보는데 최적의 텍스트라 할 수 있다. 『꽃 파는 처녀』는 주인공 꽃분이와 동생 순희 그리고 어머니와 오빠 철용 등 일가족을 중심으로 배지주 부부와의 계급적 갈등과 항거를 서사의 중핵(kernel)으로 삼고 있는 작품이다. 배지주의 소작인으로 살아가는 꽃분이 일가를 비롯한 가난한 마을사람들과 일제 경찰・군수 등과 결탁한 배지주 부부와 갈등을 기본조건으로 하고 꽃분이 일가의 수난과 혹독한 삶이 작품의 전체적인 줄거리를 이루고 있다. 『꽃 파는 처녀』는 항일혁명의 전통과 인민대중의 사상무장과 계급교양이라는 대원칙과 창작방법에 충실한 작품으로 주체예술의 전형이자 정전(正典)으로 통하지만 이념의 잣대를 걷어내고 오직 스토리와 미적 형식만을 놓고 본다면, 신파극이나 대중소설에 가깝다. 『꽃 파는 처녀』의 신파성과 통속성은 일차적으로 인민대중을 위한 예술 곧 문학예술을 통한 사상교육과 당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는 사회주의 문학의 대원칙을 구현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된다. 요컨대 목적과 원칙에 대한 강한 지향이 작품의 신파성과 통속성이라는 미적 부작용을 배태하게 된 것이다. 『꽃 파는 처녀』의 주요 스토리텔링 전략은 정형화한 선악 이분법, 감정의 과잉, 우연의 남발, 조력자(helper)의 존재, 그리고 반전과 비약 등이다. 『꽃 파는 처녀』는 이 같은 통속소설의 면모 외에도 독일의 신낭만주의작가로 분류되는 아르투어 슈니츨러(Arthur Schnitzler, 1862~1931)의 단편소설 「눈 먼 제로니모와 그의 형(Der blinde Geronimo und sein Buder」(1900)과 강력한 상호텍스트성을 가지고 있다. 요컨대 가난한 고아형제(자매)・실명한 동생・음악연주와 구걸 등 주요 모티프에 있어서 상당부분 일치하고 유사하다. 슈니츨러와 「눈 먼 제로니모와 그의 형」은 비교적 이른 시기인 1924년부터 ≪개벽≫지에 소개되거나 1938년 유치진에 의해 번역되어 연극무대에 올려졌다. 또 1954년 10월 안수길에 의해 ≪학원≫에 번역, 소개된 이후, 지금까지 5차례 이상 재출간을 거듭하였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전자가 후자의 영향을 받았거나 모티프를 차용했을 개연성이 높다. 이와 같이 『꽃 파는 처녀』는 계몽과 선전이라는 혁명문학의 목적을 구현하기 위해 독자와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신파적이고 대중적인 스토리에 외국문학을 텍스트의 목적과 흐름에 맞게 창의적으로 수용하고 받아들인 대중적 소설, 곧 이념과 통속과 신파가 결합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또 북한문학이 표면적으로는 주체를 내세우지만, 이면에는 외국문학을 비공식적인 방식으로 수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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