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20세기 후반기에 활약한 대표적 한국사학자 韓㳓劤의 韓國史學에 대한 연구방법론을 추적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해방 후 1세대 韓國史學者로서 實學의 연구, 東學農民蜂起의 究明 및 조선유교정치의 추구 등에 큰 업적을 남긴 한우근이 한국사학 연구방법론과 관련해 발표한 많은 글들을 분석․고찰함으로써 그의 한국사학에 대한 기본적 입장과 史觀에 관련된 연구방법의 문제를 살핀 것이다. 크게 3부문으로 이루어진 이 논문에서 첫번째로 한우근의 학문적 배경을 추적하였다. 그는 일제시기 平南에서 유교적 전통을 지녔던 가문에서 태어났다. 평양과 서울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마친 그는 일본에 유학하여 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東京帝國大學 西洋史學科에 다니다가 해방을 맞아 서울대학교 文理科大學 史學科 제1회로 졸업함으로써 韓國史學者로 출발할 수 있었다. 특기할 사항은 그가 중학생 때 光州학생운동에 가담해 黜學당한 바가 있고, 대학생 때에는 일제의 학병 징집을 거부해 强制勞役을 당했다는 점, 그가 당초 史學을 전공키로 결심한 이면에는 排日的 저항의식이 상당한 작용을 했지만, 해방 후의 여건 변화는 그의 전공을 韓國史學으로 바꾸게 했다는 점, 그는 동료들과 『朝鮮史槪說』을 집필하였고, 조선후기의 天主敎 傳來 문제를 다룬 졸업논문을 학회지에 실리고, 母校 강사가 됨으로써 6.25 동란 직전에 한국사학자로 대두할 수 있었다는 점 등이다. 둘째로 한우근의 한국사에 대한 인식의 방향을 살핀다는 목표아래, 당초 한국사에의 접근방식과 주요 쟁점에 대한 견해와 입장을 검토하였다. 그리하여 그가 처음에는 한국사를 세계사적 연관성 아래 合法則的으로 파악코자 하여 시대구분에서 ‘封建’이란 용어를 사용하였으나, 그것은 내용상 극복의 대상으로서의 ‘前近代’를 의미하는 것이었고, 그것이 近代化를 막은 조선후기 사회의 연구가 매우 緊切하다는 문제의식으로 발전하였음을 살폈다. 그리고 그의 민족에 대한 인식내용을 분석하여, 민족의 역사성을 중요시하고 한국민족의 역사공동체로서의 성격을 강조하였으며, 한국사에서는 민족과 국민이 일치성을 지닌다고 파악한 점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한국사의 주체성을 중시하면서 이른바 事大主義論은 그 개념과 용어 자체를 否定하였던 것이다. 셋째로 史觀과 연구방법에 대한 그의 입장과 견해를 분석 검토하였다. 우선, 그는 實證史學에 대하여, 그것이 한국사학을 근대사학으로 진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높게 사면서도, 역사가의 主觀을 인정치 않고, 종합적 판단이나 의미 부여에 무관심했다는 점에서 비판하였다. 民族主義史學에 대하여는 조심스럽게 그 혁신성과 주체성을 인정하면서도 학문적으로는 저항으로서의 역사가 지니는 문제점을 들어 錯雜性을 내세워 신중한 태도를 나타냈다. 唯物史觀에 대해 그는 강하게 비판하였는데, 唯物辨證法에 입각한 보편적 민족개념의 沒覺과 특히 북한에서의 계급사관에 따른 역사 왜곡과 민족문화 말살이 비판의 근거였다. 한우근은 實證史學․民族主義史學․唯物史觀에 대한 검토와 비판을 바탕으로 바람직한 연구방법을 모색하며 많은 고민과 성찰을 하였고 최종적으로는 크로체가 주창한 ‘보편적이면서 동시에 국민적일 수 있는’ 역사서술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던 것이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