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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한국 정치극의 전개 양상 -1920년대부터 80년대까지의 정치극운동을 중심으로-

The Development Aspects of Korean Political Theatre Movement

상세내역
저자 김성희
소속 및 직함 한양여자대학교
발행기관 한국연극학회
학술지 한국연극학
권호사항 1(52)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5-60
발행 시기 2025년
키워드 #정치극   #마당극   #서사극   #김성희
조회수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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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한국연극사를 돌아볼 때 정치극운동이 벌어진 정치극의 융성 시기는 세 번 있었다. 1920-30년대, 해방기, 1970-80년대이다. 이 정치극운동에서 주로 다루어진 담론은 계급, 민족, 민중, 역사였는데, 이는 포스트모던 시대인 2000년대 정치극에도 여전히 다루어지는 주제라는 점에서 동일성과 연속성을 보여준다. 정치극은 억압적 정치 상황으로 점철된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안티테제의 저항운동으로 전개됨으로써 강력한 운동성과 사회적 영향력을 지녔다는 점에서 중요한 연극사적 의미를 지닌다. 1920-30년대의 정치극운동은 프로극 진영이 주도했는데, 사회변혁을 위한 직접적인 도구로 연극을 이용했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공연 성과는 미미했다. 카프의 지도 하에, 혹은 연대하여 집단적으로 전개되었고, 담론이나 창작방법론은 소련 혁명연극의 이론과 모델을 답습했다. 모든 작품에 동일하게 적용된 이념 선전과 노동계급의 승리로 끝맺는 획일성, 교조성이 이 시기 정치극의 한계라 볼 수 있다. 그러나 다양한 양식과 미학을 시도하여 리얼리즘 일변도의 신극과는 차별화되는 폭넓은 스펙트럼의 글쓰기를 보여주었다는 점, 또 비전문인 중심의 연극활동, 이동식 공연 등 대안적 공연활동을 벌인 점은 연극의 저변 확대와 다각적 실천전략 모색이라는 의의를 지닌다. 두 번째 정치극운동 시기인 해방기에도 좌파 연극인이 주도했다. 번역극은 주로 소련 혁명연극을 공연했으며, 창작극은 주로 3.1운동 소재를 취하여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매개 아래 계급투쟁과 민족담론을 결합했다. 다큐멘터리, 사회주의 리얼리즘, 대중극적 극작술이 주로 사용되었고, 극적 허구보다는 실화 소재와 다큐멘터리 극작술을 선호했다. 이는 연극의 ‘교육적 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며, 공연은 재현과 의례를 결합한 퍼포먼스 형식을 취했다. 세 번째 정치극운동 시기인 1970-80년대는 3공, 5공, 민주화시기라는 정권의 변화에 따라 각기 변별되는 전개양상을 보인다. 3공이 반공을 국시로 삼으면서 좌파 이념을 명백히 내세운 정치극은 사라진다. 검열을 피해 재야연극운동이 일어났는데 대학가의 탈춤부흥운동과 연계해 마당극 양식을 만들어냈다. 체제비판적, 현실참여적 내용은 이전 시기 정치극을 계승하는 것이지만, 역사의 주체로서 민족, 민중을 상정하고 전통연희 미학을 결합한 새로운 진전을 이루어냈다. 마당극은 민족/민중성이란 지향 담론에 맞추어 미학에서도 민족/민중연희 양식을 접목했고, 배우와 관객이 함께 참여해 만들어가는 ‘열린 퍼포먼스’를 시도했다. 또 노동자 농민의 생활현장에 파고들어 그들의 문제를 연극화했고, 언론이 검열 때문에 제 역할을 하지 못하던 시대에 미디어로서의 역할도 수행했다. 5공 시대에는 민족, 민중 담론에 역사 담론이 결합되었고, 마당극은 실내마당극으로도 외연이 확장되었다. 또 정치적 메시지 전달에 치중한 언어 위주의 정치극을 탈피하여 표현방식의 미학적 탐구에 치중하는 변화를 보인다. 민주화 시대가 열린 87년부터 90년대 초반까지의 연극계는 정치극의 대 유행 시대였다. 금기였던 민감한 정치적 소재와 진보적 주장들이 거침없이 다루어졌으며, 양식과 미학 실험에 주력한 작품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정치적 금기의 해방과 민주화로 인한 투쟁의지 상실, 정치소재의 상업주의적 이용, 마당극의 상투화 현상, 대중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 등으로 인해 정치극은 운동으로서의 역동적 에너지를 상실하고 퇴조했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