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하는 『제국의 위안부』라는 저작에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화해 전략의 일환으로 위안부에 대한 기억을 탈구축할 필요를 역설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내세운 새로운 개념이 ‘제국의 위안부’라는 것이다. 조선인 위안부는 일본군에게 단순히 ‘적의 여자’와는 다른 관계에 놓여 있었던 것으로 간주된다. 조선인 위안부는 ‘빈곤한 제국신민’ 출신이었으며, 일방적 강제동원의 대상이 아니었다. 요컨대 일본군과 조선인 위안부는 동지적 관계에 놓여 있었으며, 제국의 위안부가 전쟁의 지옥을 견디는 힘은 그들 사이의 연민과 공감에서 기원하는 것이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럼에도 저자가 내세우는 ‘제국의 위안부’는 위안부와 성노예 그리고 ‘강간적 매춘’ 혹은 ‘매춘적 강간’ 사이를 동요하고 있던 존재였다. 저자에 의하면 조선인 위안부를 동원한 주체는 조선인 업자 혹은 포주였으며, 그런 점에서 위안부의 이용이 완전하게 제도화되어 있었다고 할 수는 없다. 위안부들은 조선인 민간업자들에 의해 ‘강제노동’을 강요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일본 국가의 책임은 법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상징적이고 도의적인 차원의 것에 한정되는 것이었다. 저자가 내세우는 제국의 위안부라는 수사는 대단히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것처럼 보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민족에 대한 감수성이 아니라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다. 일본 우익이 자행하고 있는 재일한국인에 대한 인종차별 행위 곧 반인도적 범죄행위의 해결 방안을 위안부 문제에서 구하는 것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라 할 것이다. 일본에서 자행되고 있는 반인도적 범죄행위에 대해 예리한 감수성을 확보할 필요가 절실하다. 이런 능력을 가지게 될 때, 북한의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 울리고 있는 요란한 경고음에 대해서도 합당한 대응 능력을 키울 수 있게 될 것이다. 위안부문제와 현실의 반인도적 범죄 행위를 연결시키는 인식론의 비약이 아니라 그 연계 고리를 차단하는 ‘인식론적 단절’ 행위가 현재 우리에게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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