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시기에 납북된 이광수는 1950년대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한국 문단의 핵심적인 인사로 자리매김되었다. 일제 식민지 시기 대표적인 친일 문인이었던 이광수는 해방이 되자 문인으로서의 활동을 할 수 없는 신세였으나 자신의 저작을 단행본으로 출판하며 작가적 위상을 유지하였다.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 사회에서 서울에 근거지를 두고 있던 출판사들은 식민지 시기와 해방기에 큰 인기를 누렸던 이광수 저작물을 대거 중간(重刊)하며 상업적 활로를 모색하였고 이광수의 대중적 위상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1950년대 불황의 출판시장에서 그 대중적 인기를 재확인한 이광수의 저작들과 1950년대 재편된 한국 문단의 권력구도에서 부각된 이광수의 근대문학적 선구성(先驅性)은 한국사회에서 이광수의 작가적 입지를 공고히 하는 데에 기여했다. 또한 이광수를 추앙하는 출판인, 문인, 유족들이 이광수의 전집을 기획, 출판함으로써 1950년대 이광수는 한국의 ‘세계적인 문호’로서의 지위로까지 격상된다. 여기에 한국전쟁 납북자로서 갖게 되는 사회적 동정 여론을 받아 과거 친일행적에 대한 이광수의 과오는 은폐된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대에 납북되어 문학활동을 마감한 이광수이지만 1950년대 출판시장과 문학, 문화, 예술계에서 전개된 이광수 추앙 분위기가 이광수의 대중적 입지를 공고히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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