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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박완서 소설의 ‘공모’ 의식과 마음의 정치—1987년 이후와 박완서 소설의 1970년대 서사

The Conspiracy in the Novels of Park Wan-Seo and the Mind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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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선미
소속 및 직함 경남대학교
발행기관 반교어문학회
학술지 반교어문연구
권호사항 (37)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371-400
발행 시기 2025년
키워드 #1987년 민주화 이후   #1970년대   #반공주의   #복원   #기억   #전쟁정치   #공포   #공모   #법   #박완서   #<복원되지 못한 것들을 위하여>   #<더위 먹은 버스>   #<조그만 체험기>   #이선미
조회수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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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박완서는 1989년 <복원되지 못하는 것들을 위하여>라는 단편소설을 발표한다. 1987년 전국적인 시위를 거쳐 대통령 직선제를 이루어내고서, 한국사회는 ‘1987년 민주화 이후’의 시기로 접어들었던 때이다. 1961년 박정희 군사 정권시절부터 전두환 대통령 시절을 거쳐 1987년에 비로소 이루어진 직접 선거제도는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한국사회를 기대와 희망으로 들뜨게 만든다. 그리고 실제로 1988년 월북작가의 해금조치를 비롯하여 과거사를 청산하는 여러 가지 복권운동에 이르기까지 대대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1970년 등단하여 줄곧 반공주의의 영향력을 다뤄온 박완서는 1970년대 어느 작은 마을에서 국회의원 선거를 치룰 때마다 마을의 주민들이 권력의 편에 서기 위해 스스로 선거 부정을 일삼던 일을 ‘복원’이라는 수기를 통해 고발하는 이야기를 심사하는 과정을 다룬 소설을 발표한다. 이 수기의 주인공은 1987년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 1970년대 자신이 저지른 부정과 권력의 추악한 면모를 생생히 증언한다. 그러나 당선 사실을 통고받으면서 바로 당선을 취소한다. 1989년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서 수기에 고발한 국회의원이 그대로 후보자가 되어 출마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소설은 소설 속 수기의 현실적 의미를 통해 오랫 동안 반공주의와 냉전문화를 경험한 한국사회에서 민주화가 얼마나 복잡하고 힘든 과정인가를 되묻는 것이다. 이 소설은 한국사회의 민주화란 1970년대의 냉전 질서, 반공주의 사회에서 살아남은 보통사람들의 삶의 구조를 총체적으로 고려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다고 말한다. 민주화 되었어도 과거를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논리를 제안하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작품의 독해는 자연스럽게 1977년의 <더위먹은 버스>, 1976년의 <조그만 체험기>에 재현된 1970년대를 통해서 완성되는 구조이다. <더위먹은 버스>는 월북한 삼촌 때문에 신원조회에 걸려 국영기업체 입사시험에 합격하고도 취직이 취소되고, 유학길도 막혀버리는 억울한 처지에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 가족의 어머니는 즉흥적인 손가락 질에 의해 빨갱이로 몰려 허망하게 총살당한 아버지를 자식들에게는 영웅으로 만들어 정체성을 부여했으며, 월북한 삼촌은 없는 것처럼 숨기고 1970년대를 살아남았다. 어머니는 스스로 1970년대 한국사회에 맞추어 가족의 신분을 세탁하고 살아온 것이다. 1970년대 한국사회에서 빨갱이 가족으로서 온전히 살아남는 일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실, 국가의 공식 기억에 맞는 ‘사실’을 어머니 마음대로 만들어서 정체성을 만들었던 가족이다. 국가가 허락하는 수준의 경험을 벗어난 사람들은 손가락질 하나로도 죽을 수 있다는 경험이 ‘공포’심을 유발하고, 어머니는 자발적으로 국가가 원하는 방식으로 과거를 꾸며대는 ‘공모’를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이 가족은 신원조회라는 절차에 의해 빨갱이 가족임이 밝혀지면서 국가가 보호해주지 않아도 되는 ‘국민’ 바깥의 사람들로 분류될 위기에 처한다. <조그만 체험기>는 이렇게 즉흥적인 판결로 순식간에 죽을 수도 있는 법이 통하지 않는 사회의 구조와 사회적인 심리를 파헤쳐 보여준다. 근대적인 법이 지배하는 사회이지만, 법을 준수하는 방식은 우연적인 연고에 의해 이루어지기에, 법이 있어서 더 공포스러운 사회라고 인식한다. 게다가 이 우연적인 법망은 돈이 있으면 통과할 수 있다. 1970년대 사회는 우연히 죽지 않으려면 국가권력 편에서 벗어나면 안된다는 한국전쟁의 경험 때문에 합리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법을 무서워하며, 우연적인 처벌의 구조를 벗어나기 위해 부정한 권력과도 공모하는 사회이다. 그렇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법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모두 가난한 사람들이다. 결국 반공주의에 의해 통제되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들인 것이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은 더 비굴하게 공모하면서도, 항상 가장 억울하게 법의 처벌 대상이 된다. 이렇게 1970년대를 살아온 사람들은 수기를 쓴 필자처럼 1987년 민주화를 희망을 안고 기대한다. 그러나 이렇게 1970년대를 구성했던 한국사회는 1987년 이후라 해서 민주화를 이루기는 어렵다. 1970년대는 이미 국가폭력이나 정권의 통제 수준이 막강했기 때문에 보통사람들은 그에 맞추어 자기 경험과는 다른 경험으로 기억을 재구조화했기 때문이다. 과거를 다시 기억하게 함으로써 권력에 다가가게 한 것이며, 이런 매혹은 공포의 감정을 기반으로 공모하게 만듦으로써 행위의 주체들이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혹은 말 못할 분노심으로 내면적 고통을 안고살게 만든다. 그리고 이들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이어서 이 문제는 계급문제로 드러난다. 수기의 필자처럼 그 모든 것을 부정하면서 복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1989년 박완서의 소설은 이 복원불가능성과 민주화를 다시 묻고 성찰하게 한다. 전쟁을 경험한대로 기억한다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도록 이미 다른 기억들로 살아버린 1970년대는, 그것을 기억하는 것 자체로 하나의 ‘전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를 문제제기하는 1989년의 소설은 1976년과 1977년의 소설들을 함께 놓고 평가할 때, 주제를 완성할 수 있다. 그리고 1987년 이후에 1970년대적 서사의 의미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