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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미국 국무부 재외공관문서(RG 84)와 한일회담

The Understanding of United States on Korea-Japan Talk Based on Declassified documents of Diplomatic missions of the State Department

상세내역
저자 박진희
소속 및 직함 국사편찬위원회
발행기관 한국사학회
학술지 사학연구
권호사항 (115)
수록페이지 범위 및 쪽수 423-462
발행 시기 2025년
키워드 #한일회담   #청구권   #평화선   #구보타 망언   #재일조선인 북송   #박진희
조회수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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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해방 후 한일회담 연구에서 한국과 일본 정부의 외교문서 이외 필수적으로 검토해야 하는 또 하나의 자료는 미국 정부 문서이다. 그동안의 한일관계 연구가 보여주었듯 한일관계는 양국관계 뿐 아니라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미국의 동북아시아정책 속에서 한국, 일본, 미국이라는 3국 관계 속에서 조망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은 강력한 중재를 통해 1951년 한일예비회담을 개최하게 만들었고, 이로써 한일회담이 시작되었다. 또한 한국과 일본 정부는 한일회담 과정에서 끊임없이 미국의 지지를 요청했고, 미국은 사안에 따라 개입과 유보, 중재 등의 형태로 한일회담에 개입하였다. 미국이 한일회담 과정에서 한일 간 현안 문제에 대해 보여준 인식과 대응은 각각 달랐다. 일본의 역청구권과 한국의 평화선 선포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입장을 표명하였다. 미국은 일본의 역청구권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밝혔고, 한국의 평화선 선포는 공해상의 자유로운 항해를 보장하는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반면 한일회담을 장기간 결렬상태로 몰아넣은 구보타 망언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논평조차 내놓지 않았다. 일본의 재일조선인 북송에 대해서는 한국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인도주의라는 명분을 내세워 동의하였다. 미국이 한일관계에서 최우선으로 고려한 것은 동북아시아 반공진영 강화라는 전략의 관철과 이를 위한 한일관계의 개선이었다. 따라서 한일 간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과 청산이라는 역사문제가 투영될 수밖에 없었던 한일회담의 의제들에 대해서는 충분히 성찰하지 않았고, 오히려 정치적으로 타협되기를 기대하였다.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