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상으로서의 내재율』의 저자는 근대, 국가, 제도와 같은 역사 철학계에서 거대 담론 차원에서 접근하는 개념사 연구와 달리, 한국의 근대자유시의 한 특성과 연관된 내재율이라는 작은 개념을 계보학적으로 탐색함으로써, 한국의 근현대 시가 형성되던 과정의 특수한 한 계기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서구/동양, 보편/특수, 선발/후발이라는 이분 구도 속에서 내재율이라는 개념의 형성 과정을 설명하는 접근법은 서구문화를 받아들이는 동양문화의 특성을 설명할 수 있는 일반적 방법론일 뿐만 아니라 근대 학문 연구의 보편적인 방법론이기도 하며, 한국의 근현대 자유시 형성 과정의 특이성을 설명할 수 있는 유효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저자는 식민지시대부터 해방 이후 남북한에서까지 내재율이라는 개념이 사용된 맥락을 섬세하게 짚어내고 있다. 서구 상징주의 시에 버금가는 내용의 리듬이 이미 있었다는 전도된 방식으로 또 다른 기원을 만들어낸 일본과 달리, 조선은 일본에서 만든 내재율이라는 애매한 개념을 부여잡고 있는 형국이었다. 보편과 중심을 꿈꾸며 새로운 것을 만들고자 하였으나 생성하지는 못한 채 남의 것을 애매하게 붙들고 있는 형국. 서구 보편에는 있으나 우리에게는 없다는 결핍, 결핍을 감추며 새로운 것을 창작하려 했으나 그럴수록 모방의 흔적만 더 강해지는 역설적 상황. 이 모든 상황이 내재율이라는 단어에 침전되어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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