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시인 이(리)용악의 ‘간극’에 대한 문제를 다룬 것이다. 여기서 ‘간극’이라는 말에는 식민지 시절 이수형의 지적처럼 “무뚝뚝한 박력있는 소재한 맛”, “그 시대의 우리, 아니 이 땅 인민들이 무한히 공감한 전형적인 비분애수”를 시로 적었던 시인(A)의 모습과 특정한 ‘교시’에 의해 북한 문예정책에 적극적으로 활동한 시인(B) 사이에서 벌어진 차이를 의미한다. 북한 문예정책은 작가로 하여금 자유로운 창작을 불가능하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이용악(A)과 리용악(B) 사이의 접점이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리)용악은 그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북한 문예정책에 자의적으로 행동했다는 점과, 이(리)용악의 창작방법이 ‘체험’을 중심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이(리)용악의 모습을 북한 문예정책이라는 ‘틀’에 가두어 버리고 ‘침묵’해 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이 논문은 이용악과 리용악이 같아지는 지점에 대해서 연구해 보기로 했다. 이 논문에서 사용된 중점적인 방법론은 이용악의 모든 시집에서 확인되는 시어 ‘강’의 매개적 기능을 조사해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의미화 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었다. 그 결과 ‘미래지향적 의지’를 찾을 수 있었다. 이 미래지향적 바람은 현실에서 안주할 수 없기 때문에 또 다른 유토피아를 찾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는 작가의 체험에서 발동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초기 시집에서 확인되는 두 감정인 ‘연민’과 ‘분노’는 이것과 무관하지 않았다. 따라서 결론은 다음과 같다. 이용악이 리용악이 되어 북한 문예정책에 적극적으로 시를 창작한 것은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유토피아적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믿음은 변할 수 있는 것임은 분명하다. ‘믿음’이라는 속성은 그 ‘믿음’이 온전하지 않다고 판단될 때 깨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리)용악이 시를 창작하는 행위의 순간만큼은 도래할 미래의 유토피아가 사회주의라고 믿었던 것이다. 이 논문 전체가 주장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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