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북한문학이 수령 형상의 창조에 집중하게 된 이유를 민족주의와의 관련 속에서 해명하기 위한 것이다. 북한문학은 출발기부터 김일성을 ‘위대한 지도자’로 그렸다. 북한문학의 이런 경향은 흔히 정치의 요구에 따른 것으로 이해된다. 주체시대 이후의 문학에 대해서라면 이런 판단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초기 북한문학에서 김일성을 민족해방의 위대한 영웅으로 그린 것은 민족주의의 내적 요구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제국주의로부터의 해방을 주체적인 차원에서 해명하고 그것을 새나라건국과 연결시켜야 할 필요성이 ‘위대한 지도자’의 형상을 만들어낸 주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새 나라 건설을 위해 민족의 단결을 도모하고 에너지를 집중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해방과 건국의 주체를 찾아야 했던 것이다. 민족해방서사는 이 주체 찾기의 요구에 따라 쓰여졌다. 이 민족해방서사에서 ‘위대한 지도자’의 존재가 관건이 된 것은 논리적인 차원에서 볼 때 제국주의와 식민지 사이의 현격한 격차 때문에 제국주의에 대한 투쟁의 승리는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체적인 차원에서 해방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양자 사이의 힘의 비대칭성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 민족을 단결시키고 민족의 에너지를 투쟁과 건설에 집중시킬 수 있는 ‘위대한 지도자’의 존재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위대한 지도자’의 존재는 민족해방서사가 작동하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이었던 셈이다. 조기천의 서사시 <백두산>은 이 ‘위대한 지도자’의 존재를 그린 최초의 예이다. 여기에서 그려진 김일성의 형상은 실제의 김일성을 능가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는 건국을 위해 민족의 에너지를 집중해야 할 당시의 일반적인 분위기 속에서 이러한 미학적 ‘과장’은 혹은 정치적 진실성이 반영된 것으로 당연시되었다. 그리고 실제의 김일성과 김일성 형상 사이의 거리에 대한 이런 인식은 주체 시대 이전까지 어느 정도 허용되었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주체 시대 이후에 들어서면서 문학 작품 속에 그려진 김일성의 형상은 실제의 김일성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김일성의 위대성은 모든 문학 작품 속에 그려진 형상의 종합을 통해서도 완전하게 해명될 수 없다는 주장이 제시된 것이다. 그것은 애초 민족주의의 내적 요구에 따라 만들어진 ‘위대한 지도자’의 형상이 김일성 자신의 것으로 독점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정치의 요구가 문학을 규정하게 되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김일성 형상의 계속적인 확장과 확대는 그 결과라고 할수 있다. 김일성은 문학 작품이 그려낸 형상의 이미지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면서 비할 데 없는 ‘위대한 수령’이 되었다. 따라서 이 시점부터 김일성과 민족 사이의 관계는 완전히 전도된다. 애초 민족주의의 이상 실현을 위해 요청되었던 위대한 수령이 거꾸로 민족을 장악하고 지배하고 장악하게 된 것이다. 최근 북한이 강조하는 태양민족, 김일성민족 등의 수사는 지도자와 민족주의의 관계가 완전히 역전되었음을 증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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