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일본의 石上神宮에 보관되어 있는 七支刀는 1874년 발견된 이래 지금까지 양국 학계에서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것은 고대 한국과 일본의 외교 관계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해석을 둘러싸고 많은 논쟁이 있었다. 그 논쟁의 1차적인 원인은 칠지도에 새겨진 글자가 오랜 세월로 인해 부식되어 판독하기 어려운 문자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선행연구는 많이 있는데, 이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것은 백제가 왜에 헌상하였다는 백제헌상설을 들 수 있다. 둘째, 백제가 일본에 사여하였다는 백제하사설이 있다. 셋째는 중국 東晋 왕조의 하사설이란 주장이 있다. 이러한 주장은 시기에 따라 변화를 보이고 있는데, 이 변화는 고대한일관계사 연구와 밀접하게 연동되어 바뀌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역사 인식과 해석 변화의 계기를 제공한 것이 1963년 북한의 김석형이 발표한 연구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역사 해석의 변화를 고대한일관계사 연구의 관점이란 측면에서 본다면, 역사가가 국가와 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 앞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하지만 이 같은 역사 해석의 차이는 단지 일본인만의 역사인식 문제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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