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소련이 해방 이후에 합작회사를 설립한 이유는 주요 산업시설을 복구·가동해서 북한의 경제를 복구하고 공업화하기 위해서였다. 양측은 1947년 3·4월에 조소석유주식회사와 조소해운주식회사를 설립했으며, 합작회사의 자본금과 경영진은 모두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구성되었다. 조소해운은 소련이 대여한 기선 4척과 북조선인민위원회가 대여한 청진항·나진항·웅기항으로 설립되었다. 이와 달리 조소석유는 소련의 투자 없이 북한이 양도한 원산석유공장으로만 설립되었다. 그러나 북한은 합작회사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1946년 8월 15일까지 발생한 대소 산업부채를 모두 청산함으로써 자립경제의 기반을 마련했다. 조소해운은 1948~1949년에 북한 전체 해양 수출입물자의 48%와 30%를 수송하게 됨으로써 해양운송에서 중추적인 기관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조소석유는 1949년 상반기부터 유류를 생산해 내무성과 지방인민위원회 등에 공급했다. 북한과 소련은 합작회사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각각 다른 입장을 드러내거나 합의 사항의 이행문제로 갈등의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양국 정부는 1948년 말까지 문제점을 타결하고 합의 사항을 이행했고 양측의 간부·기사·기술자들은 공동 운영의 경험을 축적했다. 해방 이후 소련과 합작회사를 운영한 경험은 북한이 6·25전쟁 후에 합작회사 방식보다 자립경제를 본격적으로 추구하게 된 계기중 하나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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