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 초기 진압 작전의 최우선 목표는 봉기군 주력부대 섬멸이 아닌 여수와 순천, 두 도시를 신속히 탈환하여 "정신적, 정치적 승리"를 쟁취하고 선전의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초기 진압 작전은 "빨갱이 소탕"이라는 이름 아래 무차별한 민간인 학살을 수반했고, 지리산 빨치산 문제를 초래했다. 여순사건 초기 진압 작전에 대해 한국 언론은 정부의 언론 통제 아래 반공 담론의 확산에 보도의 초점을 맞추었고, 미국 언론은 반공 이데올로기에 입각한 동아시아 냉전 체제의 틀에서 보도했으며, 북한 언론은 자신들의 체제 정당화를 위한 도구로 활용하였다. 이 글은 그간 여순사건 관련 연구에서 주목하지 않았던 초기 진압 작전의 정치적 성격을 규명하고 한국, 미국, 북한의 언론 보도를 분석하여 이 사건이 한국에서 반공 담론을 형성하고 냉전 체제를 구축하는데 끼친 영향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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